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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1): 겨울나무의 고독 연구
-그의 고독은 어디서 연유했을까?
제법 매서운 시카고의 겨울이 제자리를 차지한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날씨가 조금 풀렸다 싶어 나는 아내와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1마일 정도 걸었다. 자꾸만 약해지는 심신을 붙잡아 두려면 다리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하기에 차가운 겨울 한 가운데로 우리 부부는 걸어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공원을 거닐면서 조금은 삭막한 풍경에 몸이 싸늘했다. 그 푸르고 화려했던 풍성한 잎들과 꽃들과 열매들을 모두 떨어뜨리고 가늘고 앙상한 가지들만을 붙들고 가냘픈 바람에도 정함 없이 너무나 가볍게 요동치는 벌거벗은 나무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고독해 보였다. 아니, 한없이 고독을 원망하며 서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 겨울나무들이 전해주는 씁쓸하고 차가운 고독이 공원둘레를 꽉 채우고 있었다. 외로움에 지쳐 잔가지들이 부르르 떨면서 고독에 힘겨워하는 처량한 모습이 내 눈 깊숙이 밀려들었다. 그렇다고 나와 아내의 고독이 겨울나무에 투영된 것은 결코 아니다. 대개 시인들은 겨울나무를 통해 자신의 고독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단어에든 겨울을 붙이면 그 뜻이 금방 앙상해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겨울 강, 겨울바다, 겨울밤, 겨울비, 겨울잠, 겨울 풀, 심지어 설렁한 겨울공화국, 기타 등등.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겨울나무라는 글제목도 시인 조병화나 정환용이 오래전에 사용한 시어(詩語)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나무에서 우리 내외의 고독이 아닌 겨울나무, 바로 그들만의 진한 고독을 실감했다. 겨울나무는 사람들의 고독을 대변해주려고 매서운 날씨에도 옷까지 벗고 추위에 떨고 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우선 나무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원인부터 분석해보기로 했다. 그들 스스로가 외로움에 지친 채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겨울나무를 그토록 고독하게 만든 실체가 과연 누구일까?
나는 나뭇가지들이 떨면서 전해주는 이런 답변을 들었다. 겨울나무의 고독은 잎을 떨어뜨린 나목(裸木)으로서 상처 입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단호한 음성이었다. 겨울나무는 실제로 잔잔한 바람소리보다 훨씬 큰 소리로 내게 들려주었다. ‘나의 고독은 사람들 때문이다.’라고. 그 외침은 무슨 뜻일까? 나무는 하나님의 창조의 셋째 날에 지음 받아 땅위에 생명의 탄생을 먼저 알린 귀한 전령사이다. 나무가 살아가는 이유를 말하라면, 아마도 ‘모든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라고.’ 말할 터. 허나 실제로 나무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그 말씀’으로 창조된 나무들인데 사람들이 단지 추위를 핑계해 외면하면 겨울나무가 고독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무를 고독하게 만든 건 사람들만이 아니다. 다람쥐도, 참새도 겨울나무를 찾지 않는다. 수많은 나무들이 봄, 여름, 가을에 사람, 동물, 나비와 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일했는데 날씨가 춥다고 어찌 그리 쉽게 나무를 외면한단 말인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며 뿜어낸 긴 한 숨이 곧 겨울나무의 찬바람이다. 나무는 세 계절만을 살다가 겨울엔 춥다며 죽지는 않는다. 나무가 겨울을 힘차고 살지 않으면, 세 계절을 보다 아름답게 남을 도우며 살 수가 없다. 겨울을 건너뛰어 봄을 맞을 수 없듯이 나무는 겨울을 나기위해서 모든 것을 자제하고 차가운 바람과 눈과 얼음 속에서도 강하게 버틴다. 사람과 동물과 온갖 생명을 돕는 게 나무의 숙명이지만, 그래도 나무는 그 어떤 것들보다 사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나무를 돕지 않으면 그들이 좋은 환경에서 숨을 쉬지 못한다. 나무가 숨을 못 쉬면, 사람도 숨 못 쉬고 죽는다. 생명의 주님께선 죽은 나무에 달려 그 나무처럼 죽은 우리를 사살아 숨 쉬게 하셨다<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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