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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2): 십계명의 서두를 묵상하며<1>
나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오면 먼저 서두 혹은 머리글부터 읽고 그 목차도 읽는다. 그 책을 통해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그 저자의 마음이 거기에 표현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책 66권은 한 책으로, 그러나 각 책마다 도입을 이끄는 서문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책을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적에 나는 창세기가 모든 책의 서문이라 생각하고 창세기를 거듭 거듭 읽고 묵상하는 편이다. 모두 66권을 하나로 묶었지만, 한 권 한 권 모두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일지라도 창세기 없는 성서 65권을 생각할 수 없다. 창세기가 없다면, 혹은 있어도 읽지 않는다면 실제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그분이 지으신 온 우주만물들 중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인간 너와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가 바로 세상만사의 질서를 재는 잣대이기에 비뚤어진 세상사를 살피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그 대답을 찾아야 하고, 그분의 뜻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를 하나의 신화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가 없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불가능하다. 이제 십계명의 서문을 살펴보자.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 하나님이다(출20:1-2).’
소위 이스라엘백성은 더 이상 이집트에서 벽돌이나 구워 그 숫자를 헤아리던 노예가 아니라, 그들이 이제 자유인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 물건 취급 받던 자들이 이제 사람으로 그 신분이 바뀌어졌다는 선언이고, 이제 그 자유인은 어떻게 살아야 그 신분을 유지할지를 일 계명부터 십계명까지 일목 요원하게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친히 기록하셔서 모세를 통해 그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의 총화이다. 사실 노예들에겐 법이 없다. 그들의 주인이 각자의 법이다. 무엇인가, 혹은 누구에게나 붙들려 종살이 한다면, 하나님의 자유의 법 안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인들에게 걸맞은 율법을 시내 산에서 주셨다. 노예를 다스리는 주인의 마음대로의 법이 아니라, 노예를 사람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인데 그 십계명은 삼등분 돼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이고, 두 번째는 가족관계이고, 그리고 세 번째는 이웃과의 관계이다. 쉽게 말해서 십계명은 세 개의 커뮤니티가 생명관계로 하나가 될 때 모두가 자유로운 커뮤니티가 된다는 뜻이다. 십계명 중에서 어느 한 계명이라도 삭제되면 완전한 법이 성립되지 않게 돼 있다. 십계명에 다른 계명을 더 보태서 강화하거나 어느 계명을 빼도 괜찮은 율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개정이 불가능하다. 열 개의 계명만으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의 오경이 모두 하나님의 율법이긴 하지만, 헌법에 해당되는 것이 십계명이고, 다른 법령들은 헌법인 십계명을 십계명 되게 하는, 곧 자유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삼등분된 십계명이 중요 순으로 기록돼 있다. 첫 단계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부정되면, 가정관계도, 이웃과의 관계도 무너지면서 무언가에 붙들린 노예생활로 자유인의 신분을 잃게 된다. 가정 혹은 이웃, 곧 인간관계가 온전해지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정상화되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에 붙들려 그것을 섬긴다면, 온 세상 만물이 모두 자유를 잃게 된다. 십계명이 곧 자유와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온전한 처방임을 서두에서 먼저 선언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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