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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3): 십계명의 서두를 묵상하며<2>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말할 적에 중요한 키워드는 커뮤니티이다. 나는 40년 전에 미국에 왔지만, 그 이전 한국에선 커뮤니티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 처음으로 듣게 된 커뮤니티란 용어는 미국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개개인이 자기 취향에 맞춰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곧 자유가 이념이 된 판국에 남을 생각하고 이웃과 더불어 커뮤니티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과연 중요시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자유가 살아 있을 때 커뮤니티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물론 미국은 노예제도가 오랫동안 살아있던 나라였고, 노예출신들에 대한 차별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룹별로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커뮤니티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건강한 커뮤니티는 집단 이기주의와는 그 근본이 다르다. 개개인은 자유가 없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힘을 합쳐서 보다 큰 힘으로 그들 스스로가 주인노릇 하며 살아가려는 시도가 집단이기주의의 근본이념이다. 때문에 집단이기주의는 커뮤니티를 깨뜨리는 근원이 된다.
그럼 커뮤니티는 어디서 출발한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비롯되었다. 한 분 하나님조차도 삼위일체로 한 커뮤니티로 존재하신다.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이루어야만 생명을 살아갈 수 있다. 특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커뮤니티가 정상화 되지 않으면 다른 피조물들과의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없다.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땅마저 저주를 받은 것은 애당초 자연조차 사람과 더불어 살도록 지음 받은 커뮤니티였다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아담을 지으시고, 그를 나누어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를 사람이라 부르셨다. 곧 인간은 애당초 커뮤니티로 창조되었다. 남녀가 하나의 가정으로 커뮤니티가 되면 거기서 자녀가 생기고 하나님의 삼위일체 관계와 동일한 생명의 삼위일체 모습을 지닌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걸 볼 수 있다.
커뮤니티에 역점을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면 보다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과 사회 커뮤니티를 망가뜨린 장본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시키신 건 정령 이해하기 힘든 획기적인 사건이다. 다말이 죽은 남편 대신 시아버지 유다에게서 자녀를 낳은 일, 살몬이 기생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은 일, 보아스가 모압 여인 룻에게서 오벳을 낳은 일, 그리고 밧세바 때문에 그의 가정과 다윗의 가정, 곧 두 가정이 무너졌지만, 그 여인에게서 태어난 솔로몬을 통해서 다윗의 왕조가 이어진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하고 신기한 사건이다. 커뮤니티를 깨뜨린 장본인들을 새로운 구원의 족보에 이름을 올린 것은 하나님의 커뮤니티 재건의 성격이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간음의 현장에서 붙들려온 여인을 정죄치 않는다고 선언하신 것도 이미 깨져버린 인간의 커뮤니티를 어떻게 재건하시는지를 보여주신 좋은 사례들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대신해 죽게 하셨는데 못 받아들일 죄인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다른 것들에서 붙잡힌 노예의 신분에서 하나님 안에서 자유인으로 변신해 하나님의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이 천국 백성이고, 그것이 곧 영원한 구원이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 사역의 알파와 오메가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지 않으면 가정의 정상화도, 결국 이웃과의 관계 정상화도 불가능해진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백성을 해방시켜 자유인의 신분을 허락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인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십계명의 서두가 이 모든 뜻을 선언하신 것이다<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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