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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22): 나무 이야기 3 -The Oak-
세 번째 '나무 이야기'는 우리 귀에 익숙한 상수리나무이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산림보호 구역에선 특히 상수리나무 보호조치가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서 그 나무에 더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산림보호 구역 오솔길을 걷는 중에 어느 한 분이 어린 상수리나무를 찾아서 철망을 치고 깃발을 꽂아 어린나무건 조금 큰 나무이건 보호조치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서, 상수리나무가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고, 나무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숲속 오솔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어느 한 분이 어린 상수리나무를 찾아 깃발을 세우고, 그 나무 주변을 철망으로 감싸 보호하는 작업 중인 것을 보았다. 그런데 어린 상수리나무를 찾아 보호조치를 취하는 쪽은 유독 서쪽에 한정된 걸 보고서, '왜 동편엔 보호조치가 없지요?'라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쪽엔 이미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이쪽엔 상수리나무가 많지 않으니 어린 2세들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해주었다.
우린 보통 2세라면 우리가 낳은 자녀들에 한정해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의 2세도 그대로 놔두어도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보호하고 가꾸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2세 보호가 어쩌면 우리의 2세들을 위한 보호와도 연결돼 있다고 생각되었다. 자연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롯한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필요를 위해 지으셨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상수리나무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상징이라고도 말하고,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상수리나무 아래 묻혔다는 기록도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상수리나무 아래서 만나신 기록도 있지만, 가나안 사람들은 상수리나무 아래서 우상을 섬긴 기록도 있다. '알론바굿'이란 '통곡의 상수리나무'라는 별명도 있다(창35:8). 아무튼, 미국에서 그 나무의 보호는 크고 강한 재목으로 쓰려는 목적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번 한국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산천을 뒤덮고 있는 나무들의 푸르름이었다. 인천공항에 내려서 조카의 딸인 손녀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고, 의정부로 가는 길에 우거진 나무숲을 보는 일은 진정 뜻밖이었다. 조카네 아파트 22층에서 창문으로 바라보는 산천의 푸르름은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들이 미국에서 예약해둔 차를 타고 부산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푸르름은 끊일 줄 몰랐다. 그런데 울산에서 택시 기사에게 나무숲에 감탄한 이야기를 했더니 운전기사의 반응이 차가웠다.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지만, 산천에 재목이 될 나무는 없다고 했다. 산마다 나무들이 거의 똑같은 크기로 자라서인지 멀리서 보면 산들이 두루뭉술하게만 보였다. 산 가까이 다가가도 그 안에 들어설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작은 나무와 풀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나무가 크게 자랄 환경이 아니었다. 나무가 무성하기만 하면 좋은 게 아니라, 여러 재목으로 사용하려면 손질하며 키워야 하는데, 그 많은 나무 중에 쓸모있는 나무가 없다니 충격이었다. 만약 산에 아무리 나무가 많아도 쓸만한 재목이 안 되면, 모든 나무가 그 자리에서 똑같이 자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창조주의 지음 받은 나무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다음 세대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도 없고, 모든 나무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빼곡히 붙어 있으니 1세도 자라지 못하고, 2세들이 자랄 공간이 없다.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한 호텔 이름이 'Oakwood'였다. 그렇다면 호텔의 크고 강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려면 그 간판 뒤에 상수리나무 한 그루쯤은 버티고 있으면 좋으련만, 심어진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간판 이름에 비해선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서울 길가에서도 나무를 가꾸는 모습이 보여 좋긴 했지만, 단지 푸르름에 초점을 둔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그 종류대로' 지음 받은 나무, '그 종류대로' 쓸모 있게 키우고 가꿔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