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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42): 하나님을 안다는 것 1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의 양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감히 비교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다.
어쩌면 한 가정에서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알려고 해도 어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고, 오히려 자녀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아버지를 알기 위해 공부하듯이 책상 앞에 앉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밝혀놓으셨기에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몸(body)과 나를 일깨워주는 혼(soul)과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는 영혼(spirit)을 친히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넣어 창조하신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어느 정도 하나님을 헤아려 알 수 있지 싶다. 더구나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20-23).’ 미리 밝혀놓은 사실을 보면 피조물인 우리에겐 모든 가능성을 미리 열려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가정에서 자녀들이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의 아버지를 알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자녀들과 대화를 통한 깊은 교제가 이뤄진다면, 아버지의 전 인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터.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려면 부모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물론 하나님을 알려면 먼저 믿어야 하지만, 모르면 믿음의 향방을 가늠키 어렵다.
우리가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연구치 않았어도 신학이란 용어는 귀에 익숙하다. 하지만 신학이란 용어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선 학문적 연구가 필요한 것처럼 오해할 수가 있다. 신학(Theology)=Theo(하나님)+logy(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지 학문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누구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 깊이와 넓이는 다를 수 있다. 육신의 아버지와 자녀 간의 대화를 통해 자녀가 아버지를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귀로 들어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 애쓰면 도우시는 성령이 계신다. 결국, 그 말씀을 바르게 알도록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란 말이다. 부자간의 대화를 통한 아버지 알기와는 그 차이가 클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알려면 그 말씀을 붙들고,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각자가 직접 깊이 묵상하면서 읽고 또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그분의 말씀을 직접 정확히 읽고 묵상하는 일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창조주께서 직접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통해, 예를 들면 선악의 열매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지만, 우리 각자의 뜻이 강할 땐 하나님의 뜻을 일부로 무시, 왜곡하는 일이 많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돌로, 혹은 나무로, 산으로, 물로, 하늘로, 달과 별과 해, 기타 등등, 많은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뜻을 여러 방법으로 자세히 심어놓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전달하신 하나님의 뜻, 그 말씀인 예수를 대신할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