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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43): 하나님을 안다는 것 2
하나님을 알려면 혹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학문적으로 책이나 자료를 더듬어 자신의 지적능력을 체계화해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 가정의 자녀가 아버지를 알려고 할 때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 자녀의 ‘아버지론’이란 책이 출판되었을 때, 자기 아버지를 객관적, 혹은 주관적으로 연구해 얻은 그 지식을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
사실은 하나님을 연구한 서적들조차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기엔 학문적인 연구 서적이 진정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먼저 의심이 드는 건 웬일일까? 인간이 하나님을 연구해서 깨닫게 된 지식은 인간 자신의 약점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물론 그 스스로는 성공인 양 으스댈 수도 있지만, 인간은 첫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선악을 아는 지식’을 부부가 공유해 그 지식의 주인이 되어 그들 생각대로 선악을 분별해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인간 모두에게 전가된 최대의 약점이 되었다.
누군가는 선악의 지식이 최대의 강점이라 믿더라도 그 지식을 얻고 영생을 읽어버린 최악의 악수요, 씻을 수 없는 죄가 된 사실을 첫 사람이 보여주었다. 어쩌면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여기서 끝났다면, 인간이 선악의 지식으로 하나님 노릇이 가능케 되었다고 엄청난 신분 상승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을 터.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음과 같은 비극적 장면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하면 어쩌지? 라는 하나님의 우려가 드러났다. 결국, 그 일로 인해 인간 첫 부부는 ‘생명 나무’와 단절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첫 사람 아담의 가정은 하나님의 영생, 곧 영원한 생명과의 단절로 죽음의 길을 열어두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우선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름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우선 창조의 근원이며 생명의 근원이시기에 그분의 창조질서나 생명질서를 따라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선악의 지식은
거짓 영(靈)의 양식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God)이란 호칭을 마치 고유명사인 양 사용하지만, 보통명사이다. ‘처음과 나중이요’, ‘알파와 오메가’인 하나님께 누가 고유명사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파송을 받고 이집트로 갔을 때 자기에게, ‘누가 너를 보내서 여기 왔느냐?’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지요?’라고 여쭙자, ‘내가 누구냐고? 나는 나야!’,라고 대답하신 걸 성경영역본에선 ’I am that I am(IAM)’으로, 히브리어로는 야웨, 혹은 여호와(the Lord)로 읽는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고유명사로 착각하고,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다며, ‘주님(아도나이)’이라 고쳐 부른다. 하나님의 ‘나(IAm)’는 하나님께선 자존자의 신분 표시일 뿐, 하나님의 고유명사일 수 없다. 홀로 자존자이신 하나님께 누가 이름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인간도 태어나서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데, 어찌 자존자이신 하나님께서 ‘내 이름은 이거야’라며 말씀하시겠는가? 모든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호칭은 ‘나’이다. 하나님의 호칭도 ‘IAM’, 곧 모든 피조물 앞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나’로 드러내셨다. 하나님께선 영원히 ‘나’이시고,
우린 하나님께 상대적인 ‘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