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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56): 하나님을 안다는 것 5-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주님의 긍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우리의 한(恨)과 같은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의 의미를 헤아릴 줄 알고, 거기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하나님께 접근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한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실제로 부모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선 진정 우리의 애통을 받아들여 치유해주실 분이신지를 알고, 가나안 여인처럼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만나 유대 장로들의 전통 준수와 부딪쳐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책망하신 후 그 자리를 떠나 이방 땅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인이 나와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라고 애타게 외쳤지만, 주님은 그녀에게 냉정하셨다. 그의 제자들은 주님께 다가가서, ‘그 여자가 뒤에서 소리를 지르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요구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 여인을 외면하신 걸 보고 나서, 마치 주님의 마음을 밝히 알았다는 듯이 그 여인을 보내버리길 바랐다. 주님께서 더 단호하게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라시며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로서도 절망적인 선언으로 들릴 만큼 불가함을 선포하신 셈이다. 하지만, 그 여인은 주님께 절을 하며 ‘저를 도우소서.’라며 다시 애원한다. 그래도 주님께서 더 모진 말씀으로 그녀를 물리치신다. 주님께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에 대한 비하 발언에 더욱 모질게 질책하듯 말씀하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라고. 하지만 그녀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주여 옳소이다.’라며 계속 애원하며,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이 개라는 걸 거리낌 없이 인정했을 때, 마침내 주님의 감격스러운 반응이 나왔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때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마15:21-28)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칭찬받은 그녀의 믿음이 무엇인가? 자신의 딸의 병을 낫게 해줄 주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일까? 아니면, 주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고백에 관한 믿음일까? 물론 둘 다 쉽게 받아들일 믿음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 자신은 주님 긍휼의 은혜를 받아야 할 불쌍한 자라는 고백이 바로 구원받는 믿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주님을 향한 두 가지 믿음은 그가 믿든, 믿지 않든 주님의 신분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 없인 살 수 없는 불쌍한 이방 여인이란 신분을 붙들고, 어떻게든 주님 긍휼의 은혜만이 자기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누구라도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의 은혜를, 미리 약속된 대로 누구든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녀 스스로가 불쌍한 존재임을 고백한 사실이 주님께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후, 그것이 구원받은 믿음으로 그녀가 주님의 확인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