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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76): 하나님, 그 말씀의 본질을 찾아서 20
평범한 말의 깊이와 독특성-‘건져내다(deliver)’(2)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그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3:8).’
위의 한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약속이다. 시내 산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겠다.’는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물론 ‘건져내겠다.’는 약속엔 그들에게 새로운 거처에 관한 약속이지만, 그 땅엔 이방인 여러 종족이 선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신 것. 애굽인의 손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주민들에게 붙잡혀 다시 노예의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셔서 백성들에게 그들의 대처가 어떠해야 할지를 경고하신 뜻도 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을 미리 차지하고 있던 종족들을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살게 되면, 그들에게 붙잡혀 살게 되리란 경고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 중 하나가 가나안 땅의 여러 종족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의 영향 아래 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은 무의미하다는 경고의 뜻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한 가지 말씀 속엔 여러 가지 복합된 의미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언어의 겉모습이 우리의 입술의 말과 같다 해도 우리의 언어개념과 다른 이유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시간 속, 그 한계 속에 살지만, 영원하신 그분의 말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품은 말씀이기에, 약속이요, 소망을 품고 있기에 한가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좁은 이해와는 전혀 다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 편에 있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눅23:43.’고 말씀하셨다. 그는 ‘오늘’이란 현재에 영원한 생명을 얻어 죽음에 임했다. 따라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 강도에게 말씀하신 ‘오늘’은 단지 24시간 하루가 아니었다. 이어지는 내일 역시 영원한 ‘오늘’과 이어진 영생의 하루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에서 전개되는 삶은 전쟁과 흉년과 질병에 의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계속 하나님의 건져내심의 은혜를 통해 구원받은 영원이었던 사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닥친 모든 고난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뜻 가운데서 출애굽의 역사는 계속 소망으로 이어져 오게 되었다. 따라서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과도 일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