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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8): ‘그 사람 왜 그래?’
우리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접하면, ‘그 사람 왜 그래?’라며 그 사람에게서 전혀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처럼 의아해할 때가 참 많다. 전혀 그럴 수 없는 사람이 그런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처럼 놀라는 척 하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가 다른 누구 혹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이런저런 일을 그가 누구이든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 사고가 아닐까?
사람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 흔히 동물에 비교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한 번 쯤 깊이 묵상해보아야 한다. 왜 사람의 잘못을 공연히 동물에 빗대어 동물을 욕하는 것일까? 어쩌면 동물의 괴기한 행동을 보면서, ‘그 놈 꼭 사람(혹은) 누구 닮았네.’라고 말해야 오히려 바른 표현이 아닐까? 아무리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들일지라도 사람만큼 두렵고 무서운 존재는 아니라는 한 가지 사실만 봐도 사람들의 잘못을 보고 괜스레 짐승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의 어둠 속을 혼자 걸을 경우 가장 두려워할 존재가 누구인가? 짐승인가, 사람인가? 자신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 한 마리의 쥐였기에 다행이라 여기고 안심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동물이나 자연에 악영향을 끼쳤는가, 아니면 동물이나 자연이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쳤는가?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오히려 땅이 저주를 받은 걸 보면 땅이 받은 저주가 땅위에 살아가는 혹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악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 아닌가?
물론 창세기에 등장한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넘어지게 한 사탄을 뱀으로 형상화한 걸 보면, 사람보다 먼저 지음 받은 짐승이 인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해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아무튼 모든 삼라만상은 모두 사람보다 먼저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러니 먼저 지음 받은 것들 중 그 어느 것이든 맨 나중에 지음 받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은 매우 합리적 사고일 수 있다. 더구나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맨 처음에 등장한 뱀을 그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별로 좋게 표현하지 않은 것을 보아서 그렇게 주장할 수 있겠다 싶다. 뱀에 관한 아래의 표현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창3:1상).’
하나님께서 뱀을 원래 그렇게 짓지 않으셨는데, 타락해서 그런 간교한 들짐승이 되었는지, 혹은 타락한 천사를 뱀으로 형상화해서 간교한 들짐승으로 표현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뱀을 간교한 동물로 지으셨다면 이미 존재한 사탄을 형상화 하시려고 그렇게 지으신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사실 뱀 외엔 하와를 유혹할 다른 존재가 없었으니 간교한 동물로 지음 받은 뱀이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만큼 간교하고, 속임수에 능하고,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유혹하는 존재가 달리 있을 것 같지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상대적 주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잘못 행동하도록 움직이는 영적 존재가 사탄이긴 하지만, 사탄의 숙주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결국 사탄은 사람 속에 꽈리를 틀고 살면서(군대 마귀에 붙잡혀 무덤 가운데 살던 거라사인처럼(눅8:33) 자기 이웃의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며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바로 머리와 가슴에 마귀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들의 죄를 씻고 용서를 위한 우리의 죗값이지만,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사탄에겐 영영 패배의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도 십자가에서 패배한 사탄의 유혹을 핑계하며 자신의 실패를 그에게 전가시키고 있질 않은가? 사람들, 혹은 나 혹은 너를 통해서 역사하는 사탄에 너나 할 것 없이 조심하고 거기에 대비할 말씀도 준비하며 살자!<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