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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60): 이념과 종교가 만들어내는 적폐의 대상!
내가 고백해야 할 한 가지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태생적으로 이념이나 종교 거부로 겪어야 하는 마음의 아픔, 영혼의 고통이 좀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내 성격이 두루뭉술하다면 모든 것들을 받아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할 수 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기에 겪는 아픔이 크고, 치유받기 힘들다. 우선 온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념과 종교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살피는 경우에 고통이 생긴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판명된 인간이 자기의 생각으로 주인 노릇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이념이고, 종교란 결론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이념이나 종교로 내세울 게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종교성만은 지니고 살고 있으니 잠재적 이념주의자, 혹은 종교인이라 지적해도 틀리지 않는다. 에덴이란 낙원에 살던 단 한 쌍의 부부가 스스로 주인 노릇으로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그들 부부만의 종교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에덴의 동편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종교를 확대하거나 재생산하며 살아온 것이 그들의 후손인 인류의 역사요, 문명사가 아닌가? 인간의 역사는 종교적 삶으로 이어져왔고, 집단이기주의로 시작되는 이념 전쟁도, 종교적 전쟁도 역사 가운데서 사라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은 이념과 종교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이 아니라, 표기만 다를 뿐, 같은 개념으로 사실은 일란성 쌍둥이일 뿐이다. 이념이 종교이고, 종교가 곧 이념이다. 타락한 인간이 주인노릇, 혹은 신(神) 노릇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철부지 어린 소년 시절을 보냈다. 물론 학교에 들어가 1,2년을 보낼 나이였지만, 다행이었을까, 나의 부모는 내 바로 위 누나는 학교에 보냈으면서도 막내인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 일본교육도 받은 적이 없고, 창시개명도 하지 않았다. 집안의 막내였기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나도 그 당시에 콩깻묵을 배급받아 먹고 살았으니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친일파라면 나 역시 면제받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오늘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중앙시평 란에서 고대훈 수석논설의원의 ‘나는 친일파 자식인가 빨갱이 후손인가’라는 글을 읽고 공감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쓴 사람들 외에 일본치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욕을 해도 할 말이 없고, 북의 잔인한 침략으로 가족을 잃고 수많은 가난과 고통을 겪었어도 그 가운데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빨갱이 후손이라면 오늘의 한국 상황에선 피할 길이 없을 것 같아서 너무나 씁쓸하다. 일제 강점기에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그 때 살아남은 자들을 지칭해 친일파라며 청산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권력을 쥔 현대의 이념주의자들이 과거로부터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들을 향해 날마다 칼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을 섬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그 땅에 살면서 왕을 섬겼으니 그들은 소위 친 바벨론파였을까? 이집트로 팔려가 그 나라의 총리까지 지낸 요셉은 친 이집트파로 이스라엘에겐 매국노였을까? 아니면 모세가 자기 백성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묻었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애국자였는가? 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40년이나 살았으니 친 이집트파의 우두머리였는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40년을 살았으니 그는 친 미디안파인가? 진정 모세는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흠이 많은데 하나님께선 어찌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단 말인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실수를 범한 적은 있지만, 결코 하나님을 떠나진 않았다. 자기 이념의 주인은 아니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친미파라며 적폐의 대상이 될 날이 오지 않을 거라 누가 보장하는가?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주인 노릇하는 이념주의자나 종교인만은 되고 싶지 않다. 만약 교회조차 좌파 우파로 나누어진다면, 나는 주님을 찾아 교회를 떠나 어디로든 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