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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61): 오늘 따뜻한 봄눈을 맞았다!
오늘은 4월 14일 주일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습관처럼 밖을 내다볼 때만 해도 눈이 올 거라는 어젯저녁의 일기 예보가 빗나간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후에 아내가 일어나 부엌에 나갔다가 환하게 웃으며 돌아와서 눈이 내린다고 예보가 아닌 마치 긴급 뉴스처럼 내게 직보를 전했다. 아내의 직보를 듣고서 밖을 내다보니 내 눈을 의심할 만큼 눈이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전한 눈 소식이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것에 마음이 흡족한 듯 오히려 환한 미소가 마치 하얀 눈 같았고, 더욱 으쓱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튼 교회 예배에 참석하려고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앞에 다가갔을 땐 쏟아지는 눈보라가 바로 폭풍 수준이었다. 둘이서 자동차 양편에 서서 자동차에 쌓인 눈을 아무리 손 빠르게 치워도 우리 노인 두 사람이 눈을 치우는 속도보다 몰아치는 눈의 속도가 무서우리만큼 빨라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언뜻 봄눈이 내렸다는 생각이 들자 제법 따뜻한 감촉이 내 온 몸에 정겹게 스며들었다. 사실 나는 해마다 이곳 시카고 지역에서 4월에 눈을 맞은 기억이 잦은 터인지라 4월이 들어섰는데도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눈이 내리지 않을 땐 오히려 가슴 한편에 섭섭한 마음이 겨울눈처럼 찰싹 달라붙어 오히려 내 가슴을 차갑게 아니 시리게 할 때가 있고, 때론 섭섭한 마음까지 선물한다. 우리가 자연을 노래하고 또한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할 땐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산천이나 초목의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비와 구름도, 따끈따끈한 햇볕까지도 이것저것 가려서 ‘좋다’, ‘좋지 않다’고 편 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서리도 눈도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에 어떻게 내리든 그대로 받아들여 즐기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자연의 변화에 따라 주변의 무엇이 달라지를 살펴서 상상의 그림이라도 한 폭 그려보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신기한 모습에서 눈을 떼서도 안 된다. 특히 자연과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에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을 터. 나는 비가 올 듯 보이거나 예보를 들어도 좀처럼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아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을 잘 챙기고, 날씨가 조금이라도 궂다 싶으면 내게도 우산을 가져가라고 당부하지만, 나는 우산을 챙겨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 그대로 환영이다. 자연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닥치는 그대로 받아서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모든 자연의 변화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베드로가 밤새 고기잡이에 실패했을 때 주님을 만나서 자기 경험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따라 깊은 데 그물을 던져 엄청 많은 고기를 끌어올려 친구의 배까지 불러 도움을 준 것처럼 어디서 어떤 환경이든 주님을 만나면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의 실패까지 회복시켜준 걸 볼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성공을 통해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후 영적 풍요를 누린 경험이나 또한 그가 갈릴리 바다에서 만난 폭풍 속에서 물위로 걸어오신 주님을 만나 안전을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도 자연의 변화 속에서 그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일상에서 우리가 맞는 자연의 변화가 어떠하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갑작스런 주변의 변화에도 마음의 묵상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 내외는 예배를 마치고 감자 반개와 시원한 국물을 맛있게 먹고서 눈 폭풍 속을 뚫고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눈 덮인 바깥 풍경을 전화기에 담아 눈을 보기 힘든 방글라데시의 아들내외에게 전송해주었다. 방글라데시에도 눈이 내려서 세계에서 공기 오염이 둘째라면 섭섭해 할 그 땅이 조금이라도 정화되고, 주변과 사람들의 마음까지 백옥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눈처럼 희어지는 기적을 기대하면서 오늘 우리는 눈을 즐기고 나누고 또 감사했다<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