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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추웠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혹한과 폭설의 연속입니다.
식당까지의 거리가 100m나 될까말까한 거리인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웃기는 광경이 연출됐습니다. 시찰나온 부소장에게 수감자 몇몇이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혼자 방을 쓰는 수감자가 있어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수감자는 에이즈 감염자인데 전염때문에
두사람이 같이 생활을 할수없기 때문입니다. 이 웃기고 멍청한 컴플레인을 지켜보며 얼마전 읽은
필립 얀시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청년이 (에이즈환자) 1000마일이 넘는 거리를 달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에
성탄파티를 하러 기대를 품고 도착했습니다. 값비싼 식기와 음식들이 준비됐는데 청년의 자리에는 일회용
종이 접씨와 프라스틱 포크가 놓아져 있었답니다.
제가 즐겨보는 TV채널중에 PBS인터내셔날이라는게 있습니다. 가끔씩 동양의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방영을 하는데
언젠가 조용필의 소록도 공연을 방영한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콘써트를 정말 감명깊게 봤는데 그 당시 조용필씨의 소록도 공연은 두번째 였다고 했습니다. 첫공연은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때 자신은 두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한센인들이 아쉬워하자 자신만의 제대로 된 공연으로 다시 위로드리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그는
" 다시 오겠다"고 했고 끝내 그약속을 저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에이즈와 한센병중 어떤것이 더 나쁜병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공통의 고통은 거의 모두 주변공동체가 보이는 거부로 인한 외부적인 고통일 것입니다.
문둥이 시인 故윤지영氏가 정순재신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인생무상이라더니, 오늘 이골짜기에서 생긴 일들을 대강
적어보면, 하늘을 원망하지않고 쓰러진 늙은 처녀의 장례식이 있었고, 소독냄새가 코를 찌르는 서울시의 적십자 표지를
붙인 앰블런스 차가 중환자를 한명 싣고 왔습니다. 글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그는 보행도 불능하여 기어다니는 처참한 인생입니다. 과연 그 얼마나 학대받은 인생이겠습니까? 며칠전엔 마약중독자인 모친구가 영등포 어느 물에 빠져
죽었다는 등 사건들의 자극에 부대끼게 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악착스런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길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어떻게 하면 저렇게 마음대로 걸을 수 있습니까?" ---- "사람이 그립습니다. 울고 싶도록 사람이
그립습니다." 시인은 잘못 태어난 인생을 박탈당하여 절름거리고 신음하며 고독을 씹고 있었습니다. 다만 살아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사람다워지려고 몸부림쳤습니다. "나는 문둥이올시다. 그러나 풋내기 문둥이올시다. 문둥이
로서의 진가를 맛보지 못한 문둥이올시다" 건강한 우리는 어떠합니까? 문둥이보다 나은게 뭐가 있습니까?
그후 시간이 오래지나 신부님이 우연한 기회에 나환자 병동에서 시인의 안부를 물었드니, 수년전에 세상을 떴다고
일러주더랍니다. 저는 대학시절 방학때마다 소록도로 자원봉사를 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남학생도 아니고
여학생이었는데, 어쨌든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센인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한일합병초기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용시설을 갖춘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립했습니다. 원래 한센병환자를 위한
수용소를 먼저 세운 것은 미국인 선교사들이었지만 '문명의 수치'를 제거하는 사업을 선교사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총독부는 이때부터 한센병환자 '대책'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1934년 소록도 자혜의원이 한센병 환자만을
수용하는 소록도 갱생원으로 개편되자 환자는 졸지에 '죄수'가 되었습니다. 경찰은 환자를 체포해 소록도 갱생원으로
이송했고, 잡혀온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이 무기수가 되었습니다. '격리'란 수용자를 위한 조치가 아닙니다.제가 있는
이 감옥이 죄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짓지 않은 사람에게 더 유용한 것처럼, 소록도 갱생원도 한센병 환자가 아니라
한센병 환자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섬안, 높은 담장 건너편으로 환자들이
사라지자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공포는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소록도 갱생원이 생긴지 이태뒤 서정주는 "문둥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습니다.
"해와 하늘빛이 / 문둥이는 서러워 / 보리밭에 달뜨면 / 애기하나 먹고 /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
" 아버지가 문둥이 올시다 / 어머니가 문둥이 올시다 / 나는 문둥이 새끼 올시다 /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 하늘과 땅사이에 / 꽃과 나비가 / 해와 달을 녹인 사랑이 /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 세상은 이목숨을 서러워서 /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故한하운 시인의 시구절입니다.
한센병은 전염병이지 유전병이 아닙니다. 환자가 함께 사는 가족을 전염시킬 확률이 높기때문에 유전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도 성경을 읽으면서 이 병에 관한 구절을 많이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난치
병이나 불치병을 저주와 연결시켜 생각합니다. 그러나질병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하나는 모든 불행과
저주의 뿌리는 악과 죄라는 사실입니다.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 한마디 / 머리를 긁다가 땅위에 떨어진다 / 이 뼈 한마디 살한점 /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 하얀 붕대로 덧 싸서 / 주머니에 넣어둔다 / 날이 따스해지면 /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 깊이 깊이 땅파고 /
묻어야겠다.
입춘이 지난지도 한참인데 교도소의 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사방은 온통 얼음나라 입니다. 이런날에도 한데서
자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하운 시인은 한센인이었습니다. 그때는 명동성당아래 빈민굴이 있었던 모양
입니다. 그의 시 중에는 명동과 남산이 나오는 시 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는 극도로 절제된, 그러나 이런날 한뎃잠
같이 뼈속 깊이 스며드는 生의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저주와 고독의 깊은 늪에서 방황했던 시인 한하운은 어머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문둥병 환자가 곁에 있으면 어머님 조문에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봐 두눈 벌겋게
뜨고 동네 뒷산에서 며칠을 서성거렸다 합니다.
모두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갇혀있는 저로서는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장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탐식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몸을 먹어버린 어느 신화속의 괴물처럼 이 문명이 그런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절체절명의 슬픔앞에서 가만 가만 떨어진 손가락을 싸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조상을 그렇게 하듯 자신의 손가락을
양지 바른곳에 묻어야 겠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두렵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검허가 없는 사람들이 저는 두렵습니다.
세상 떠난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은 이들을 주제로 지은 글입니다. 1962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의 음성
나환자들이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간척사업을 정부가 개입해 중단시킴으로
허무하게 좌초된 사건입니다. 당시 "나환자들과 함께 육지에서 살수없다"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빛발치자 총선을
의식한 군사정권은 육지주민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330만평의 오아도 간척지는 1989년에 완성돼 일반주민에게
분양됐습니다. 이사건은 '실미도 사건'과 함께 역사속에 묻혀 았던 대표적 인권유린 사례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 또는 다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장애는 조금 두드러지는 질병과 부상의
흔적일 뿐입니다. 보이는 곳에든 안보이는 곳에든 누구에게나 그런 흔적은 있기 마련이니 장애인이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요즘도 한국은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면 난리치고 정애인이 만든 빵을 사먹지도 않느 비정한 인간들이
넘쳐나고 있답니다.
문둥병환자들은 아주 초기 단계를 제외하고는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실 그게 문제입니다. 문둥병균이
신경세포를 죽이고 나면, 환자들은 병이 악화되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감지하지 못합니다. 문둥병환자는
송곳으로 얼굴을 긁을 수도 있고 펜치로 손톱을 빼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세포를 파괴하고 결국 사지를
절단하거나시력을 잃게 되지만 정작 문둥병자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픔을 느끼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은
그 누구 못지않게 분명히 고통 받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은 친구나 가족등 주위의 공동체가 보이는
편견이나 학대등으로 인한 외부적인 고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 시몬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머나먼 이국땅, 그것도 감옥안에서 조용필씨의 콘써트를 보면서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객석으로 내려가 한센인의 손을 일일이 맞잡고 포옹했습니다. 미국방송 나래이터는 그를 가리켜 한국의 성자라고
칭했습니다. 한센인들은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노래했고 무대위로 올라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었습니다.
'작은 사슴의 섬' 이란 이름에 걸맞게 따뜻하고 선한 마음들이 어우러진 감동의 자리였습니다. 그순간 만큼은
이방인의 땅으로 여겨졌던 흔적도, 소외된 사람들의 그늘진 아픔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카운셀러에게 인터뷰를 신청 했습니다. 카운셀러가 좀 게으른 편이라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알수없지만 일단 인터뷰를
해보고 상황이 어렵다 생각되면 다른 방법을 취해볼 생각입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하며 각필합니다.
2/24/2015 O O O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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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Subject | Author | D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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