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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맞으러 가는 길 2 부활절 축제를 향한 기쁨의 여정 2
먼저 부활하신 주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한 번 묵상해 보자. 주님의 요구를 그분의 표현으로 직접 표현하자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선하다는 걸 맛보고 알라!’ 이어서 ‘나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시34:8)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다면, 악이 우리를 뒤좇을 때 선하신 주님께로 피해야 하는데 주님의 죽음으로
우리가 맛보아 알고 있는 선(善)이 사라지고 없다면,
우리가 살아있다고 해도 영원히 어둠 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지 않겠는가?
주님의 선하심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장이 난다면, 우리가 좋다는 그 선(good),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 생각에 선하다는 것은 주님의 선하심(goodness) 때문이고, 주님께서 선하다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도 선하다고 말하고, 주님께서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은 좋지 않은 악(not good)이라며 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원히 선하신 주님의 선이 중단돼 사라지면, 우리는 영원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맛보지 못하니 결국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나와 너, 그를 믿는 우리 모두의 죄를 속량해주셨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묻히신 무덤이 열리지 않고,
주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래도 우리가 속량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실에
아무런 하자가 없을까? 주님이 무덤에 묻혀 영원히 사라지고, 대신 우리만 살아있다면, 결국 하나님의 장자 예수 그리스도는 사라지고, 양자 된 우리만 살아 아버지 하나님의 상실한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며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우리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간 흩어진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입증하셨고, 승천하신 다음에 십 일째 되는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께서 땅 위에 살아생전엔 사람들이 맨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늘의 일을 하셨다면,
주님의 승천 후엔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의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영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계속 성령의 사역을 펼쳐 역사하고 계신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에 이런 편지를 보내 그들의 마음속에 부활의 주 예수의 평화를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던 걸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골3:15)
주님의 돌아가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놓으셨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는 그들 가운데 배반도 반역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니 한 몸 돼 평화를 이루도록 평화를 선물하신 것.
그것도 닫힌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20:19). 복을 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