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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99) 분노를 발하는 근원적인 죄가 무엇일까?
분노는 시도 때도 없이 누구에게서든 나온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성별과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크고 작은 분노가 밖으로 언제든 터져 나온다. 어쩌면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 밖으로 배출될 때까진 시간이 걸리지만, 분노는 그보다 훨씬 쉽고 빠르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기 마음에 부딪히기도 전에 밖으로 튀어나온다. 물론 그런 분노를 억지로 참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당장 그 자리에선 혹시 참는다고 해도 돌아서서 혼자서라도 분노를 쏟아내되 오히려 당사자가 아닌 가족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일시적인 혹은 다른 방법으로 분노를 쏟아내면 혹시 인품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받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분노에 관한 평가도 다양하다. 분노를 의분의 용기라고 말하면서 분노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격려하기도 한다.
물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기도 한다. 만약 누가 전혀 분노를 발하지 않는다면, 바보 취급은 물론이고, 선악을 구별치 못하는 어리석고, 무식한 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다. 사람들은 선악을 분별치 못하는 자를 바보로 여기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하는 건 분노가 바로 이미 불법이 돼버린 선악의 지식을 자기 나름의 분별해 구분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면 웃고 기뻐하지만, 만약 자신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분노가 나온다. 하나님으로부터 훔쳐 자신의 것인 양 그 지식의 선악 판단으로 사람이 분노를 발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행위, 곧 의분으로 가장하는 위선 행위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선 사람의 분노가 사리 분별도 없이 언제든 튀어나오는 걸 알고 계시기 때문인지, 하나님께선 바울 사도를 통해서 분노가 나오더라도 속히 그것을 삭이고 오래 간직하지 말라고 조언하신 걸 볼 수 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엡4:26-27).’
그렇다. 인간은 하나님만의 선악의 지식을 도용해서 자신의 전가의 보도처럼 언제든 사용하고 있으므로 불순종으로 인해 소유하게 된 첫 사람의 유일한 원죄를 인정하고 항상 자제하기를 하나님께선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바울을 통해서 말하게 하신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남들에게 분노를 발하는 일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옷 입고 지상에 사는 동안에 완전한 성화가 가능한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완전히 성화 되기까진 개인 스스로 그 죄를 스스로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 아닐까? 우리가 성화 되기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첫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로 죽음을 사는 현실에서 그 사실을 없던 일처럼 눈감아버리지 않으시고,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창3:22).’고 밝혀놓으신 사실을 보게 된다. 그 금단의 지식을 가지고 에덴의 동편으로 쫓겨난 인간은 그 선악의 지식을 끊어낼 수 없기에 죄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선악의 지식으로 세상을 보며, 분노를 토하며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