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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6): 진정 공평한 세상이 가능할까?<1>
세상 어디서든 끊임없이, 마치 진리인 양 목청껏 외치는 구호 중 하나가 있다. 그 구호가 무엇일까? 요즘엔 특히 누구든 알고, 누구라도 바라고, 누구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구호는 공평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 이래 그 어디에도 그 어느 것도 공평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그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구호 자체가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속임수 구호인 게 분명하다. 창조주 하나님께선 하루하루 엿새 동안 모두 다르게 지으셨을 뿐, 이것과 저것을 지으시면서 공평의 잣대를 사용치 않으셨다.
우선 공평이란 말이 자기 귀에 좋게 들린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이미 커다란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나는 우선 이런 추운 겨울에 쓰레기통을 뒤지며, 혹은 깡통을 들고 이집 저집을 찾아 구걸하는 걸인과 공평해지기를 윈치 않으며, 그렇다고 백만 혹은 억만 장자와 공평해지고 싶은 마음은 더더구나 없다. 나는 80여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렇게 생각해거나 노력을 기울이며 땀 흘린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내가 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될 수 없으니 먼저 포기해버린 자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그렇게 되면 나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더욱 큰 부자가 되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결국 나는 남들과 공평하기를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나와 동일한 조건하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나와 공평해지기를 원치 않을 터. 공평을 말하면서도 자신은 남들과 다르기를 바라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이중성격을 가진 자가 인간이다.
세상이 애당초 공평치 못해서 인간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부당함을 소리치며 살아가는 이념주의자들이나 그런 이념에 물든 그런 정치인들이 마치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어줄 것처럼 미소까지 보이면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 그런 거짓말로 한 나라를 좌우지하는 권력자가 되기도 하고, 그런 이념으로 만든 거짓말조차 자신이 만들어낸 독창적 이론인 양 내뱉으면서 자신이 마치 공평의 표본이나 되는 듯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 있다는 게 안타깝지만,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런 구호를 합창하며 따른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 세상 어디에서도 공평으로의 정상화는 불가능하고, 더구나 공평해지는 것이 정상화도 아니다. 원래 공평했었지만, 그것이 무너져서 다시 공평해져야 그것이 정상화이지만, 애당초 공평이란 현상은 그 단어가 나오기 이전에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는 거꾸로 말하고 싶다. 공평해지지 않아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뤄지지 않아야 정상이고, 공평해지지 않아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수가 있다. 공평은 생명의 삶에 있어선 허상에 불과하다. 공평이 허상이라는 건 아주 쉬운 실험으로 쉽게 증명될 수가 있다. 누가 열 사람에게 백만 달러를 공평하게 분배해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열 사람이 공평하게 부자가 되겠는가? 열 사람이 모두 공평하게 행복해졌겠는가? 분명히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 백만 달러를 가지고 더 부자 되려고 더더욱 힘쓰고 땀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만하면 됐지.’라며 푸근한 만족감에 행복해 하거나 오히려 그런 푸근한 마음보다는 세상을 온통 가진 듯이 자신이 어느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는 최대의 만족감으로 행복을 누리다가 지쳐버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제삼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모두 공평한 족속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돈의 액수의 많고 적음이 공평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사람을 공평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가진 돈의 액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공평한 세상은 진정 불가능하다. 돈의 공평, 공평한 액수는 없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살펴야 할 것 같다<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