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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83): ‘사랑은 아무나 하나!’(4)
주체와 객체의 서로 다른 사랑
언젠가 나는 ‘사랑은 선택이다.’라는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사람들을 자기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선택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선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는 시중의 불만을 지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사랑이 선택이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로 밀려오든 누구에게서든 사랑을 많이 받으면 좋고, 행복한 것처럼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지만, 남들보다 많은 재물의 풍요가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남들보다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즐거운 비명이란 말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행복이 밀려든다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조차 몰아내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선 창조주이시고, 스스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좋다.’고 만족해하셨지만, 특히 사람을 향해서 그들이 선악을 판단해서 선택하며 살아가기 이전에 에덴에서 이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무엇을 선택하느냐, 무엇을 더 좋아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살아가는 것의 위험을 죽음으로 경고해 두셨다. 인간이 주인처럼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모두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선악과의 금지로 경고하신 것이다.
하나님 한 분만을, 하나님 한 분의 선하심만을 따라 순종하고 살아가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의 그 뜻 가운데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 곧 하나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신 것이나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을 분별해서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당연한 요구이다.
더구나 모든 피조물은 그분에 의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1:16하).’ 그렇다고 바울의 선언이 어떤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주인은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선언이다. 우리 각 사람은 그분에 의해서 존재케 되었고, 그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로 바꿔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결국은 하나님 외엔 그 어느 것도 내 것 네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사실의 확인을 위해서 꼭 장례식장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피조물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가 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의 조상을 통해서도 알고 있고, 가깝게는 우리 형제나 부모의 죽음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얼마 오랫동안 내 소유일 수 있을까? 또 나를 사랑한다는 환호가 언제까지 내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내 것이 없는데 마치 내 것인 양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내가 그것을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들을 밀어내고 몰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동물들이 새끼를 낳고, 그 어미나 애비가 그 새끼들에게 젖을 빨게 하고,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것도 사랑이다. 하지만 새끼들이 어미의 젖을 빨아 먹는 것이 어미에 대한 사랑이란 말을 이해해야 한다. 어미와 새끼, 양측이 모두 사랑의 행위이지만, 어미와 새끼의 사랑은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어미는 주는 사랑, 새끼는 받아먹는 사랑이다. 사랑의 주체와 객체의 차이가 진정 뚜렷하지 않은가? 생명을 책임지는 사랑의 주체가 있는 반면 주체의 사랑에 순응해 그 생명을 사는 삶이 곧 객체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