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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76): '인간 퇴비화(Human Compositing)'
사람은 누구나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인 누가 만들어낸 뉴스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에덴을 쫓겨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그러기에 이 말에 토를 달거나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그 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늘 들은 뉴스는 내게 가히 충격적이다. 인간의 ‘사체 퇴비화’ 법안이 워싱턴 주 상원을 통과해서 어제(5/21) 주 지사의 서명이 끝났고, 내년 5월부터 ‘인간 퇴비화 법’이 시행된단다.
‘인간 퇴비화’란 사람의 시신을 나뭇조각과 알팔파(alfalfa=구레나루라는 일종의 목초)와 짚으로 채워진 강철 컨테이너에 넣어서 소위 30일간 숙성시키면서 미생물 분해 과정을 거친 후, 최종 산출된 퇴비, 곧 영양분이 풍부한 흙으로 재구성돼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채소를 키우는데 적합한 거름으로 만든단다.
사람의 주검이 이제 유기농을 위한 가장 좋은 거름으로 둔갑돼 건강 식단을 위해서 채소를 가꾸는 거름으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어디서 나왔는가? 그 이유가 탄소 배출을 감축코자 내놓은 법안이라니 인간의 위선의 적나라한 모습이 ‘인간 퇴비화’보다 훨씬 더 역겹다. 탄소 과다 배출은 결국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인데 자신들의 탐욕을 줄일 생각보다는 겨우 ‘인간 퇴비화’ 법안을 만들어냈다는 말인가? 물론 다음의 구호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탐욕은 결국 인간의 마지막을 거름으로 만든다!’ 이렇게 말이다. 아무튼 내년 5월을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워싱턴 주에서 나오는 유기농 채소나 과일이 우리 식탁에도 오를 날이 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지금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물론 히말라야 풍경 중엔 시신을 들판에 내놓아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하는 조장(鳥葬)이라는 장례 절차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조장이 바로 사람의 주검을 퇴비로 만드는 것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걸 인정할지라도 주검을 거름으로 만들어 채소를 가꾸는데 사용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채소를 먹이겠다는 그런 발상은 아무래도 지나친 실용주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이념놀이는 항상 인간의 주인 행세이니 인간의 주검을 거름으로 만드는 일에도 열심히 응원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주검을 거름으로 만드는데도 5천 달러가 든다지만, 다른 장례비용보다야 훨씬 적은 편이니 실용적인 면에서 값싸게 치르는 장례로 생각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인간끼리의 말놀이를 가지고서는 시신 훼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그분의 뜻을 밝힐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시신을 땅에 묻는 장례를 아름다운 일이기에 땅에 묻지 않는 것 자체가 ‘밟힌 시체와 같다.’는 말로 시신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밝힌 것을 보게 된다(사14:19-20). 이것은 무덤으로 내려간 바벨론 왕의 주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주검을 안장하지 않는 것이 곧 그의 생애에 범한 죄의 저주라는 걸 말해준 것이다. 때문에 주검이 누구의 것이든 땅에 안장해주는 것이 인간의 육체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도록 땅에 묻어주는 장례가 곧 사람을 흙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어디든 찾아다니며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다가 블레셋에 의해 길보아 산에서 비명횡사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다윗을 사랑하던 요나단과 그의 두 형제까지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채 그들의 주검들이 버려졌을 때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에셀 나무 아래 묻어 장례를 치러준 사람들을 다윗이 칭찬해준 걸 볼 수 있다(대상10:12;삼상31:1-13;왕상13:29-31). 사실 사람이 죽어 무덤에 묻힌다는 건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거기서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라는 걸 알게 한 것이다(요5:28,29). 죽음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면, 무덤은 부활을 위한 모든 주검들의 일시적인 대기 장소요, 죽음이 승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승자라는 걸 선언해주는 기념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