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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77): ‘사랑은 아무나 하나!’(1)
사람들은 흔히 불꽃같은 사랑을 말하고, 꼭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그런 화끈한 사랑을 쏟아내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고 평범한 사랑보다는 한 번이라도 뜨겁게 불태우고 싶은 나름대로의 소원, 혹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가 있다.
만약 내가 불꽃같은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을 일컬어 안정적이지 못하고, 또한 위험한 인물로 여겨진다고 말하면 나의 편견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사실 불꽃같은 사랑을 어디에, 무엇에 비교하면 좋을까? 가족이나 혹은 친구들과 캠핑을 나가서 여기저기서 나뭇가지를 주어서 한 곳에 모아놓고 폐지를 불쏘시개 삼아 연기를 마셔가며 눈물로 불 짚인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 진정 모닥불은 주변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할 만큼 활활 타오르는 절정의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불꽃 주변에서 서로 웃고 즐기다가도 불꽃이 꺼지거나 혹은 꺼지지 않을 땐 물을 부어 불씨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깡그리 꺼버리고 각자 자신들의 잠자리로 향하는 모습이 오히려 낭만적이라 여겨지는 대신 오히려 불꽃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찰나적인 것으로 기억되는 것이 모닥불의 운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불꽃같은 사랑이란 시작과 끝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고 때론 허무해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불꽃이 사그라진 다음에 그 때 비로소 생각난 듯 군고구마를 찾아내 그것을 먹으면서 어둠 속에서 시커멓게 분칠해진 입을 벌려 서로 웃으며 즐기는 담소가 더욱 진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사랑은 오히려 불꽃이 사그라진 그 다음에 더욱 깊이가 있고, 오래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불꽃처럼 사랑은 한 번 뜨거운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으로 누리고 살아가는 생명의 본질이기에 사랑은 불꽃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사랑은 어쩌다 한 번 씩 주고받는 소꿉놀이와는 전혀 다르다. 곧 귀중한 생명을 더불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불꽃처럼 금방 사그라지는 것이 사랑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불이 아니라, 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모닥불을 지피듯 인위적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에서 강물의 이미지와 더욱 닮았다. 사랑은 불꽃처럼 무언가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생명을 살리는 것이란 뜻이다. 불은 늘 혀를 날름거리며 높은 곳을 움켜쥐고 그것을 태워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물은 힘찬 폭포수라도 항상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 거기서 사랑의 성격, 또한 겸손한 사랑의 힘을 느낄 수가 있다.
일단 물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 흐르거나 깊은 곳에 스며든다. 물이 평평한 곳을 만나면, 일단 그곳을 꽉 채운 다음엔 물의 표면은 항상 평행을 유지하고, 남은 물은 또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면서도 평평한 물은 물길이 되어 뱃길을 만들어준다.
물론 바람이 바다를 치고, 강물을 치면 물의 표면을 평행을 잃고 요동치면서 쓰나미가 일어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은 곧 평온을 유지한다. 어떠한 폭풍에도 사랑은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이것을 물의 성질에서 찾았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해 흐르고 넘쳐나지 않으면 항상 평행을 유지해서 안정을 도모하는 그 물의 성질 때문이다. 물은 애당초 낮은 곳이 제 집인 양 낮은 곳에 초점을 맞춰 흐르고, 또 흐른다. 사랑을 주는 주체는 혹시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는 몰라도 사랑을 받는 객체는 그 사랑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왜 사람들은 눈에 물이 보이지 않으면 땅을 파고 밑으로 내려가는가? 아래로 스며든 물, 아니 사랑은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어디든 보다 낮은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역류하는 나일강을 보고 깨달은 게 있다. 역류처럼 도도히, 그러나 잔잔히 지중해로 향해 흐르는 그 물길이 바로 사랑의 정해진 코스, 아니 죽음을 떠난 여정, 곧 생명의 길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