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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86): ‘사랑은 아무나 하나!’(7)
부자간의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이 있을까?
아버지날에 한 번 생각해 본 물음이다. 위의 물음에 관한 대답을 세상에서 찾으려고 하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로 묵상해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의 한 아버지의 아들이 성인이 되면 아버지, 곧 부모를 떠나서 다른 가정의 어느 딸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독립된 새로운 가정을 이루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셨다. 그것도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갖기 전이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라는 사실과 관련시키지 않으면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기에 이 물음에도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한 가정의 아들에게 부모를 떠나서 ‘너 자신의 독립된 가정을 세우라.’고 명하신 뜻이 무엇일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너를 낳은 부모의 가정을 떠나서 새로운 네 가정을 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들에겐 결혼한 그의 아내이고, 그 아내와 이룬 새 가정이란 말을 이해하고 자녀를 결혼시켜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교훈이나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적 명령이다.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인간의 가정 만들기를 위한 최초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만 참뜻을 이해할 수가 있다.
어느 가정이든 그 남편과 아내 사이에 어느 누구도 끼어들어 그들 사이를 나누거나 벌어지게 만들 수 없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인간 창조질서이다. 남편의 부모나 아내의 부모가 결혼한 자기 아들이나 딸이 이룩한 새 가정 사이에 개입해서 그들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거나 갈라놓을 수 없다고 못 박아 두신 사실을 시부모와 친정의 부모 모두에게 내리신 동일한 주의보이다. 이것은 단순히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나 효도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 문제이다. 어느 가정이 아들이나 딸이 결혼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낳은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서로의 사랑과 순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의 새로운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새로운 가정의 탄생이라는 뜻에서 새로운 가정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새로운 부자관계 형성이 최우선이다. 한 남편의 아내가 된 다른 가정의 여인은 시부모보나 친정부모보다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기 자녀 사랑이 우선일 수밖에 없고, 한 여인의 남편이 된 남자는 자신의 친부모나 처가의 장인장모보다 자신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딸이 시집가서 혹은 아들이 장가가서 자식 낳더니 자기 부모마저 잊어버렸다거나 결혼하더니 달라졌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들 새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탄생한 새로운 가정으로 하나님 앞에 최초의 아담과 하와처럼 지음 받은 새로운 가정으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기에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어떻게 이뤄졌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그의 부모로부터 독립시키시고, 또 이삭을 그 아버지로부터 독립시키시고, 그리고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역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독립시키셨지만,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각각 독립된 한 가정, 한 지파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각 지역까지 분할해서 마치 도시 국가처럼 독립해서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되 한 가정으로 시작하셨고, 한 나라를 세우신 것도 한 가정으로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결국 하나로 시작하시고, 하나로 이룩하시고, 하나 되게 하심으로 마무리하신다. 결국 하나님 한 분과 연결되지 않으면 인간의 존재 의미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도 또 다른 이웃들과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게 돼 있다. 진정 누구도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케 된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 따라서 부모가 자녀로부터 독립하는 것 역시 하나님 안에서의 자녀를 향한 참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