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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89): 나무와 사람 이야기
나무들이 조금 키가 자라면 어김없이 그 모습이 원뿔꼴을 이뤄 스스로 안정된 모습으로 바뀐다. 물론 나무들의 안정된 모습이 그의 이웃들에게도 안정감을 선물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주어 나무를 보는 일은 항상 즐겁다. 나무는 약하든 강하든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의 손길 혹은 발길을 피할 수 없어 꺾기고 베이면서 수시로 아픔과 죽음을 겪으면서도 그 원뿔꼴은 자연에 안정된 모습을 선사한다. 더구나 나무들의 그늘 아래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 평화롭다. 나는 스스로 안정을 취하고, 다른 것들에게도 안정감을 선물하는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원뿔꼴로 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엉뚱하게 나무들의 머리 부분이 과연 어디일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나무들의 머리를 보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들의 머리는 땅 속 깊이 묻혀 있어 사람들의 눈과 마주치지 않는다. 나무들, 혹은 다른 식물들은 모두 머리를 땅 속에 묻고 거기서 모든 삶을 관리하고 수행한다. 머리에 목뼈가 붙어 있는 것이 뿌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무의 밑동이고, 거기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몸통이 시작돼 커지면서 수많은 가지들이 옆으로 빙 들러 자라며 나무 몸통이 위로 오를수록 가늘고 작아지면서 결국 원뿔꼴을 이룬다. 나무가 높이 자랄수록 둥지와 가지들이 더더욱 가늘고 약해지면서 하늘과 손잡고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모습이 하늘 아래선 당연히 취해야 할 겸손의 모습처럼 보여 한결 아름답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사람의 머리는 어떤가? 나무처럼 땅 속 깊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 땅 속에 있는 나무들의 머리와는 반대편인 하늘을 베개 삼고 얼굴을 치켜들면 드높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머리는 어디에 묻어두거나 숨길 수도 없어,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어라.’는 노랫말과는 다르게 어디든 머리를 쉽게 숨기지 못한다. 잠시는 몰라도 머리를 숨기고서는 생명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감옥에 갇힌 자들이라도 반드시 운동장으로 내보내서 그들에게 하늘을 볼 기회를 주는 것은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숨통을 조이진 않겠다는 배려이다. 감옥에서도 하늘 보지 못하게 독방에 가두는 게 보다 힘든 벌이라는 보더라도 하늘에 머리를 둔 사람들은 항상 하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김 삿갓처럼 나그네로 살지라도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갈 특권, 그것이 은혜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사람의 머리는 하늘을 향하게 돼 있으니 땅 속에 머리를 둔 나무와는 정반대로 원뿔꼴이 거꾸로 서있어 불안한 모습이지만, 두 발을 벌려서 걸을 수 있으니 나무들의 원뿔꼴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걸 보더라도 사람은 분명히 크고 높은 곳, 하늘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두 발로 걷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진정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할 임무를 부여하셨다. 단순히 머리를 하늘에 두고 있다고 해서 사람과 동일한 임무를 부여받은 위치에 있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다. 두 발을 벌려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는 것도, 그로 인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머리를 하늘에 둔 사람만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사람과 나고 자라고 죽을 때까지 결코 제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나무, 이들 두 사이를 묶어준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은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은 몸으로 돌아가셨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는 그 말씀대로였다. 모든 나무들이 머리를 땅에 묻고 아무 이유 없이 한 자리에 서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나무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너는 나에게 달려 이미 죽은 자이다.’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윗의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은 도망가다가 나무에 머리가 달려 죽임을 당했고, 주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는 나무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름답고 안정된 원뿔꼴의 아름다운 나무가 자기 몸에 생명을 매달아 우리에게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