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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94): 숲의 이야기(1)
1
아내와 나는 숲으로 간다. 숲이 내게 보낸 환영 특사들
가냘픈 모기들이 우리를 맞는다. 내 피가 유난히 달다는 걸 알고
미소를 지으며 모기들이 날아온다. 환영특사들의 얄궂은 장난이다. 나는 돌아서며
‘여보, 갑시다!’ 그 특사들에게 쫓긴 나, 숲을 등지려 한다.
내 마음에서 숲을 몰아내려는 모기, 정말 모기일까, 간사한 내 몸일까? 바로 그 때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형형색색의 큰 소리 화음으로 합창하고, 숲은
그 바람을 품고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한다.
‘왜 내 얼굴의 미소를 보기도 전에 나를 떠나려느냐?
네가 오늘 나를 떠나는 순간
너는 어디에서도 숲을 이루지 못해
나를 닮지 않은 숲이 어디 있어!’
내 어리석음을 꾸짖는 소리 확연하다
내가 돌아설 때 모기들이 벌을 받은 듯 바람에 날려 숲을 떠나려 하자
숲이 바람에 큰소리를 얹어 내 귓속을 향해
창을 들고 달려와 내 고막을 콕콕 찌르며 들려준 말
‘숲이 모기들을 쫓아내면 그들이 거할 곳이 어디란 말인가, 모기소리 없이
숲이 그 고독을 어찌 견딘단 말인가? 모기 없는 숲이 어디 있어,
작고 여리지만, 툭툭 쏘는 모기가 있어 살아있는 숲인 거야!’
2
숲은 누구와도 무리지어 살 줄 아는 마음씨 착한 생명체
혼자선 결코 숲이 될 수 없는 운명, 하지만
숲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 구름과 비,
빛과 어둠, 바람과 나무와 풀들, 다람쥐와 노루,
풍뎅이와 메뚜기, 검은 새와 갇혀 있다 도망 나온 앵무새, 그리고 웅덩이와 모기들
너도 나도 모르는 수많은 것들, 심지어 전장의 패잔병들처럼 죽은 나무들까지도 무리지어
서로 도우며 함께 모여 이룩한 숲! 숲은 하찮은
어느 것 하나에게도 노랑딱지, 붉은 딱지 내밀지 않는다!
3
숲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품고, 숲은
자기 안팎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받아들인다.
숲 속에서의 은밀한 말은 지붕의 위에 틀어놓은 확성기
에덴의 숲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한 최초의 낙원, 그 숲에서
쫓겨난 인간, 어디서도 숲을 이루지 못하는
쉴 곳 없는 나그네! 그들이 쫓겨난
하나님의 숲으로 다시 돌아갈 날이 과연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