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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03): 하나님의 하나 (1)
-구원의 뿌리 찾기-
하나님을 관련시켜서 쓴 ‘하나님의 하나’는 우리의 숫자 표기로 사용된 1,2,3.4..처럼 나열된 아라비아 숫자에서 만나는 처음 1이란 숫자와는 전혀 다른 존재 표시이다. 하나님의 하나에 대해선 잠시 뒤로 미루고, 우선 내가 항상 수(數)의 복수 개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살펴보기를 원한다. 같은 것이 하나 이상일 땐 그것은 물론 복수이다. 그러나 같지 않은 것 두 가지 이상이면 복수로 취급하는 것은 서로 다른 하나하나를 무시하는 잘못된 셈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하나를 인정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 하나 됨의 가치를 폄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모두 복수로 취급해서 자신들과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단지 피부색깔 만으로 인종을 구분해서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질 않은가? 그들은 백인 전체를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묶어서 복수로 만들고, 그 숫의 힘으로 자신들과 다른 인종을 복수로 묶어서 미움의 저주를 퍼붓고 테러를 가하기도 한다.
여기서 먼저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나뿐인 사람이다.’라고 선언해 놓고 다음 말을 이어가려고 한다. 내가 나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기에 애당초 그러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럴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란 존재의 실상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어디엔가 또 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둘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나와 똑같은 사람이 어디에도 없으니 나는 그와 다른 하나일 뿐,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놓고 싶어서이다. 내가 둘 중에 어느 하나가 되면 나는 반쪽자리이고, 내가 셋 중의 하나가 되면 3분의 1의 인간이고, 아니, 100명 중의 하나가 되면, 나는 100분의 1의 사람이란 말인가?
물론 인간 사회에선 그렇게 계산해서 인간의 가치를 마음대로 정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런 현상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가치를 깎아내리는 현상이 일반화 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어느 회사에서 한 사람을 뽑는데 1000명이 지원했다면, 그 경쟁에서 뽑힌 한 사람은 그 만큼 큰 가치가 부여된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1000명 중에서 단지 다른 한 사람을 뽑은 것이다. 물론 그를 선발한 회사는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된다고 생각했기에 그 한 사람을 선발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뽑힌 그 한 사람이 1000명 중에 없었다면, 또 다른 한 사람이 선발돼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터. 사람들의 복수 가운덴 각각 다른 수많은 하나하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 다른 하나라면 모두 각자가 일등인 셈이다.
특별히 우리의 몸을 예로 들어 말하면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손이 몇 개인가라고 물으면 당연히 두 개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론 오른손 하나와 왼손 하나이고, 각각 다르게 돼 있으니 오른손을 왼손에, 왼손을 오른손에 바꿔 붙이면 정상이 아니라, 단지 불구일 뿐이다. 오른발과 왼발도 마찬가지이고, 오른쪽 귀와 왼쪽 귀도 각각 다른 하나하나이다. 눈이 두 개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눈이 두 개라고 해도 눈의 초점을 하나임을 안다면, 각각 다른 하나하나의 눈이 초점 하나에 맞추어야 눈의 기능이 정상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온 우주만물을 지으셨는데 그 가운데 똑 같은 것이 하나도 없게 지으신 그 뜻을 일컬어 하나님의 창조질서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똑 같은 것이 여러 개로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될 수가 없다. 더구나 똑같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하나하나가 온전하다는 뜻이다. 하나하나가 온전해야만 다른 하나, 혹은 각각 다른 여러 가지와 하나(Onenes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한 분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