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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07): 하나님의 하나(3) -구원의 뿌리 찾기-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인생의 답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하지만 왜 그럴까에 해답을 각자가 찾든지 아니면, 영원히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하나 찾는 일이 어렵다는 건 하나를 없애버리고 모두를 복수로 만들어 그것으로 힘을 삼아 권력을 누리려는 무리들이 하나를 없애버리거나 무시해버리고 복수(複數)로 만들어 지배하려는 탐욕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는 그들의 숫자로 하나 뿐인 단수를 제거하려고 애를 쓴다. 하나를 복수 안에 집어넣으려 안달이다. 세상의 모든 권력은 예외 없이 자신들과 다른 하나를 아주 싫어한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많은 수 곧 복수를 신봉하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복수에 들지 않는 하나를 싫어하는 자들이 결국 한 분 하나님을 싫어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를 지키시고 그 하나를 유지하려고 애쓰시는데 사람은 모든 것을 복수로 집어 삼켜 그것을 자신들의 권력으로 보다 큰 것들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그 힘에, 그 권력에 좌우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헤아리는 1,2,3,4...와는 다른 하나님의 하나 속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하나는 산수의 숫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명체이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헤아리는 산수의 숫자를 가지고선 하나님을 도저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하늘의 별의 수효를 헤아릴 수 없고, 바다를 막고 있는 모래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는 걸 안다면, 하나님을 만나려고 숫자로 접근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사실 0을 처음 사용하면서 ‘아무 것도 없음’의 의미였다고 한다. 한 분 하나님은 0(제로) 이전 영원히 존재하신 한 분이시고, 창조주로서 모든 것을 지으셨고, 사람은 가장 뒤에 지으셨으니 사람 역시 모든 것들이 존재한 뒤에 지음 받았기에 사람에겐 ‘아무 것도 없음’의 의미인 0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하나님께는 애당초 0, 곧 ‘아무 것도 없음’의 의미는 해당사항이 없고, 홀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최초에 빛을 지으시고, 그 빛으로 어둠을 나누셔서 하루라는 시간을 지으셨으니 그 빛 이전, 그 시간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다는 뜻이고, 그래서 영원하신 한 분이시다.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선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하신 오직 한 분이시기에 한 분, 하나로 존재하신 분으로 아무 것도 없는 것의 하나님이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하나로 존재하신다. 하나님께선 물론 어둠 속에도 물의 깊은 심연 속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계셨기에 하나님께선 무(nothingness)의 하나님, ‘아무 것도 없음’ 곧 0의 하나님이실 수는 없다(창1:2). 질서가 없는 어둠을 무(無)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물로 덮인 심연 위를 운행하고 계셨기에 어둠조차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던 그 존재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둠을 재료로 사용하셔서 첫 날에 만드신 빛으로 밤과 낮을 만드셔서 하루라는 시간을 창조하셨으니 어둠도 무(nothing)가 아니라, 존재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첫 날에 빛을 창조하시고, 그 빛으로 어둠을 나누셔서 밤을 만드셨다. 밤의 실상은 빛으로 인한 낮의 실상과 하나 되어 하루라는 시간이 된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선 먼 훗날에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나중이라 선언하셨지만, 하나님의 이전과 이후에 다른 어느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선언이기에 오직 하나님 한 분, 하나로 자신의 유일성을 선언해놓으신 게 분명하다. 하나님께선 영원히 무(無)와는 상관없이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한 분, 영원한 하나이시다. 하나님의 하나는 얼마나 크고 광대한 지 세상의 모든 숫자를 총동원해도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하나에 상대치가 될 수 없다. 인간이 헤아리든, 못 헤아리든 소위 헤아리는 숫자로는 하나님의 하나를 결코 누를 수도 덮어버릴 수도 없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