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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14): 모세에게 죽음을 안겨주신 하나님의 뜻
세계적 명산인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산악인들은 수없이 많다. 물론 히말라야 외에도 높고 낮은 산을 찾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이다. 그들 중엔 험난한 산의 높은 정상을 밟아 정복하고픈 마음을 품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저 산이 저기 있기에 느릿느릿 오르다보면 정상에 다다른 사람들도 있을 터. 물론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낮은 언덕이라도 자주 오르면서 산을 정복한 쾌감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모세가 120평생의 마지막을 모압 땅, 요단강 동편에 자리 잡은 느보 산에 올라가 생을 마감한 사실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는 거룩한 산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자였는데 왜 그를 느보 산으로 올라가 거기서 죽게 하셨을까?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가 원한 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그의 순종이었다. 모세는 늙어서 더구나 몸이 약하거나 병이 들어서, 아니면 살만큼 살았으니까, 혹은 죽을 때가 되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아니다. 모세의 정정함을 이렇게 밝혀 놓고 있질 않은가? ‘모세의 죽을 때의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삼상34:7).’ 한마디로 모세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려는 의도된 죽음이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는 일, 더구나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완전한 은혜의 과업은 그 땅에 하나님의 때에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더구나 단지 이스라엘백성이 아니라, 죄인 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실 일이라는 걸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조치였다. 물론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은 신 광야(zin), 가데스에 있는 므리바의 물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그의 잘못 때문이라 밝히고 있지만(신32:48-52), 그 개인의 최후가 단지 하나님의 심판의 죽음이 아니라, 모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은혜가 자연스럽게 바뀌는 장면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이다.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이미 죽었다. 에덴에서 한 가지 불순종으로 아담이 죽었지만, 그리고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이미 죽은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열 가지 계명으로 이스라엘, 아니 모든 인류가 이미 죽었다는 걸 확인시켜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모형으로서의 모세가 구원자 여호수아(예수)로 바뀐 사실이 바로 모든 인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영광스럽게 죽은 사실은 율법이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율법 아래선 모두가 그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 한 모두가 죽은 자이듯이 모세 역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 율법 아래선 이미 죽은 자임을 확인시키시고, 대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선 모든 죄인이 다시 살 수 있다는 은혜의 복음이 바로 느보 산에서 모세의 죽음으로 선포된 것이다.
물론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 죽었지만,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거둬들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두심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인간은 죽었지만, 율법 아래서도 모두가 죽은 자라는 걸 보여주신 것이다. 모세가 죽음을 맞을 때 임종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 한 분만이 모세의 죽음의 이유를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율법 아래선 죽은 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산 자임을 변화 산에서 엘리야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와 회동하는 장면으로 그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마17:1-13).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 그들이 은혜의 주님 앞에서 새로운 생명의 영광을 만끽하고 있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 오직 그리스도를 지칭해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귀기우려 살게 되는 것,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