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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28): 기적은 하나님의 비상조치이다!
하나님의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한 가지 오해가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만약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기적을 기대하거나 바라고 산다면, 그의 삶이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것과 지금도 계속해서 그런 기적을 기대하며 일상을 살아가려고 목매어 애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오늘 각자의 배고픔을 5병2어의 주님의 기적으로 풀어보고 싶은가? 오늘의 광야 생활, 이스라엘이 40년간 하늘의 만나로 살았는데, 오늘도 여전히 그들의 광야 생활처럼 고달프고 배고픈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셨던 것처럼 오늘 저에게도, 혹은 저희에게도 그런 만나를 내려주셔서 배고픔을 해결해주세요’,라고 그와 같은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믿음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눈먼 사람, 귀머거리, 앉은뱅이, 수많은 나병환자, 다리 저는 사람, 열병 환자, 기타 수많은 환자들, 그 어떤 치유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자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왜 그들은 모두 기적으로 고쳐주시거나 살려주시지 않으시고, 다만 몇몇 사람들만이 그런 혜택을 받게 하셨던 것일까? 주님의 능력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그런 기적들 속엔 하나님의 다른 뜻 담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실 사복음서에 많은 기적들이 기록돼 있지만, 특히 요한복음엔 단지 일곱 가지의 기적만을 언급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놓고 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이해하는데 단초를 찾을 수가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20:30-31).’
어떤 사람의 육신의 병 고침이나 육신이나 정신의 불구를 정상으로 돌려놓으신 기적이나,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일지라도 그 모든 기적에 부여된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하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여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 곧 영생을 얻기를 바라신다는 뜻을 밝히 말씀해 놓으셨다. 결국 주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영혼을 구하러 땅 위에 인자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란 뜻이다.
오늘도 몸과 마음의 상처로 불편하거나 고통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각자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였다면, 그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받은 것이니 육신의 약함을 고침 받지 못한다고 해서 영생 얻은 믿음을 떠날 수 없고, 떠나선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믿음은 결국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초점을 둔 것일 뿐, 하나님께선 기적으로 인류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으신다는 메시지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은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도록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처방이었을 뿐, 영원히 지속되는 근본 처방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요, 부활이요, 승천이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교회로 모아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이었다.
광야에서 하늘의 만나로 살던 이스라엘, 그러나 40년 후엔 그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땀 흘려 지은 농사의 소출로 살아가도록 하늘의 만나의 기적은 더 이상 없었다. 5천명이 배불렸던 5병2어의 기적이든, 4천 명이 먹은 기적이든 모두 단지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난 기적이었다.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했지만, 그 역시 가뭄의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선 까마귀를 이용해서 엘리야를 먹이셨고, 사르밧 과부에게 베풀었던 밀가루나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은 기적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그 땅의 가뭄이 그치고, 그 집의 기적도 그쳤다(왕상17). 기적은 일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펼치시는 특별 비상조치이다. 비상조치가 끝나는 바로 그것이 곧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