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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50): 감사와 나눔의 계절에!
언제나 새해를 맞을 땐 우려와 기대 속에서 맞게 되지만, 2019년을 처음으로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해의 끝자락 11월 중순도 훌쩍 지났다. 혹시 가족과 친지를 떠나서 그 동안 소원했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더 신나는 날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땅의 감사절의 기원은 너무 소박한 데서 출발했다. 청교도들이 함께 모여서 3일간 잔치를 벌이며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그 해의 옥수수 수확이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모인 축제였다. 그해가 1621년의 일이다. 그 후 1789년 11월 26일을 조지 워싱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로 선포했고, 그 후 아브라함 링컨이 1863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날’로 마련했던 것을 1941년 의회가 11월 넷째 목요일을 법적 공휴일로 정해서 지금까지 매년 지켜오고 있다.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풍성하게... .
첫 번째 감사절! 이 날은 분명히 소박한 옥수수 소출의 풍성함을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던 추수감사절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감사의 조건을 옥수수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서 찾았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물론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빛들의 아버지’께 초점을 맞추자는 취지였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에 온전한 감사를 드리지 못하면 지금 내 손에 없는 그 어떤 것, 혹은 더 좋은 것만을 바라다가 감사를 놓치게 된다.
Thanksgiving은 Thanks 와 Giving이 합쳐진 단어이다. 받은 것에 감사하는 삶과 남에게 주는 삶, 곧 좋은 것을 베푸는 삶과 연결돼 있다. 그냥 Thanks Day로 마감되면, 사랑이 흐르지 않고 말라버려 금방 잊히고 만다. 그렇다고 나에게 무언가를 베푼 사람에게 은혜 갚듯이 꼭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든 베풀 수 있다면, 그것이 감사와 사랑의 보다 풍성한 흐름이다. 만약 서로 아는 사람끼리만 사랑을 주고받는다면, 내가 받은 사랑의 굴레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랑의 중단은 사랑의 영원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다.
우리 가정 역시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멀리 어느 선교지에 나가 있는 우리 아들 내외와 그들의 오랜 사역을 위해서 늘 관심과 사랑으로 돌봐주시고, 재정적 후원으로 그들의 삶과 사역을 가능케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열정과 헌신을 다 쏟고, 또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즐기시는 그날까지 한 분, 한 분의 기도와 사랑이 계속되어지길 부탁드리며, 누구에게도 되돌려줄 수 없는 더 많은 사랑만을 부탁하는 염치없음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기를 다시 머리 숙여 부탁드릴 수밖에 없다.
금년 감사절엔 그 동안 남에게 사랑을 베푼 분들이나 혹은 사랑을 받은 분들이나 모두 함께 한 마음 한 뜻과 공동의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감격하면서 우리 모두의 남은 삶이 감사로 넘쳐났으면 좋겠고, 그런 삶을 우리 하나님께 다시 한 번 맡겨드리길 소원한다.
그 감사의 흐름이 어찌 지나가는 하루만의 감사로, 아니, 마치 지나가는 행사 치르듯이 끝낼 수가 있겠는가? 어찌 우리들 끼리끼리의 은혜 갚는 한 날, 하루 한 차례로 훌쩍 지나쳐버릴 수가 있겠는가? 숨 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거나 감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형제 된 우리끼리 서로 감사하는 삶도 계속되기가 쉽지 않고, 잊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형제애를 잊지 않는 삶에 초점을 맞춘다면, 감사의 삶은 계속해서 강같이 흐르게 될 것이다. 주안에서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