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게시판
HOME > 나눔터 > 나눔 게시판
짧은 글(155): 진리의 본질을 살피는 특강(1) -진리의 값은 얼마나 될까?-
1. 진리는 곧 영생이고, 자신의 현재 소유와는 전혀 다른 보화이다!
장사한다는 것은 물건을 팔고 사는 사이에 이익을 남기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물건을 파는 장사에 대해선 좋은 인상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상인은 자신의 물건은 다 좋고, 싸다고 말하거나 혹은 급해서 밑지고 판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정직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장사는 정직과는 거리가 멀다는 편견이 상식처럼 통하는 사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잠언엔 상인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 사람의 거짓됨을 지적하고 있어 흥미롭다. 넉넉한 돈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진 돈이 조금 밖에 없다거나, 좋은 물건인 줄 알고 마음에 들어 사려고 하면서도 물건의 질을 낮춰서,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잠20:14).’고 지적한 걸 듣게 된다. 상인이 파는 좋은 물건을 좋지 않다고 우겨서 헐값에 사고선 집에 가선 물건이 좋다고 자랑하는 꼴이란 꼭 우리의 거짓된 마음을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잠언엔 이상한 거래가 또 있다. 무언가를 사기는 하지만, 팔지는 말라는 당부의 말이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라(Buy the truth and do not sell it(잠23:23).’ ‘진리를 팔지 말라’는 당부가 있는 것을 보면, 진리를 사서 팔거나 그런 장사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진리를 사라고 했으니 진리를 사야하는데 그 값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느 가게에서 진리를 살 수 있을까? 진리를 사서 어디에 쓰는 것일까? 진리를 사지 않으면 어찌 되는 것일까?
우선 진리의 가격을 가늠해보기 위해서 다음의 구절을 묵상해 보기로 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라는 말씀과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6).’ 이 말씀에서 진주의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돈을 몽땅 지불해야만 살 수 있을 만큼 값진 보화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일단 이 보화와 진주를 진리를 취득하기 위한 그 값이라고 생각해보자.
물론 진리의 값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진리를 사고자 하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진리의 값을 들쭉날쭉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진리의 값이 일정하게 매겨져 있진 않기에 누구에게라도 가능성이 열려있다. 하지만, 진리를 사려면 누구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니 진리는 참으로 신기한 보화라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누가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쉬울지 한 번 생각해보자. 소유가 많은 사람, 소유가 적은 사람, 어느 편이 더 쉬울 것 같은가? 그렇다. 아무래도 소유가 적은 사람이 훨씬 더 쉬울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소유가 적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자기 소유로 삼으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진리를 소유하고픈 마음이 생긴다면, 자신의 소유가 적은 사람이 진리를 소유하기가 훨씬 더 쉽지 않겠나 싶다. 더구나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게 세상이다 보니, 진리를 소유코자 하는 가난한 사람이 진리를 소유할 확률이 훨씬 높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영생을 바라며 찾아온 한 청년에게 주님께선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결과는 그가 부자였기에 근심하며 돌아갔다(마19:16-22). 그는 영생 얻기를 바랐지만, 주님은 그에게 자신을 좇되 그의 모든 것과의 결별을 요구하셨다. 주님을 좇는 것이 진리를 좇는 일이고, 진리를 좇는 것, 그 자체가 영생이고, 영생은 결국 그가 붙잡혀 있는 소유와 결별할 수밖에 없다. 그 진리의 절대가치를 지적한 말이다. 진리는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누구든 그 진리를 위해선 자신을 통째로 드려야 그 진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