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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62): 어느 노인 마라토너의 이야기
구십 세가 겨우 3,4년 앞으로 다가오는 어느 목사님, 아니 멋진 스포츠맨 한 분의 이야기이다. 겉으론 참 약해보이기도 하고, 허리도 조금은 앞으로 굽어진 듯하고, 그의 육신 어디에도 힘 있는 근육이 붙어 있을 것 같지 않은 호리호리한 몸매가 마치 약한 몸이 상할까봐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분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르다. 마라토너로서의 경력이 대단한 분이고, 지금도 세계 여기저기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는 현역이시다. 며칠 전 그가 하와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입상한 소식과 부인과 함께 밝은 미소를 짓고 찍은 사진이 내 전화기에 담겨져서 그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오는 4월엔 런던 마라톤 대회에 초청을 받아 참가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분의 마라톤은 단지 체력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순이 가까운 자신의 나이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당찬 의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분을 처음 본 것은 어느 교회의 노인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서이다. 얼굴을 작고 가무잡잡한데, 그래서일까, 눈이 유독 크게 보이셨던 그분을 강의실에서 한 번 보고 돌아왔는데 어느 날 여럿이 모여 탁구를 치는 탁구장에 그분이 나타났다. 내가 탁구를 치고 있는 곳에 처음 오셨으나 어느 교회에서 처음 본 인연 덕에 그분과 잠시 앉아서 지금까진 탁구를 치고 있는 사람들 중엔 내가 제일 연장자라서 그분의 연세를 여쭈어 보니 86세라도 하셨다.
나는 그분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탁구를 치게 되었는데 그의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분의 몸은 세월 속을 헤쳐 나온 연세와는 전혀 다른 움직이었다. 그분에게 탁구 치는 운동은 일종의 몸놀림을 위한 유연성을 연마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누구보다 탁구를 잘 치지만, 누군가에게 이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느릿느릿 움직이며 치지만, 힘차게 몸을 움직이는 걸 보니 마라토너로서의 몸 관리 차원의 보조 운동으로 탁구를 치로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여기저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뛰고 달리는 것은 누구보다 속도 경쟁에서 이겨보자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달리기 시작하면 끝까지 달리는 완주에 목표를 두고 있기에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몇 등을 하더라도 풀코스를 완주하려고 달리고 또 달린다는 걸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마라톤은 육체는 물론 정신적 영적 단련 과정이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 탁구 클럽 회원들이 그분에게서 스포츠 정신을 착실히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젊었을 때나 교사 생활을 할 적에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았지만, 내가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운동장에서 편을 갈라서 축구를 할 때 상대를 이겨보려고 철없이 날뛰던 때와는 다르게 조금 커서 운동할 적엔 이기고 지는 것과는 아예 관심을 끊었다. 나는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을 격려하는 경우에도 ‘좀 더 잘하라!’가 아니라, 볼을 보고 그 볼을 따라 몸을 재빨리 움직이는데 초점을 두고 격려했을 뿐, 경기에 이기고 지는 것, 혹은 잘하고 못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적어도 다른 이와 조를 이뤄 함께 하는 운동이라면 결국 개인이든 단체든 각자의 포지션에서 다른 선수와 하나 되어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것이 관건인데 다른 선수들은 열심히 뛰는데 자신은 구경하듯 제 자리에 그대로 서있다면, 그는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을 할 적엔 몸을 잘 움직이라고 격려해주고, 몸을 움직이되 미리 예측하는 빠른 판단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 각자의 건강한 삶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함께 운동하면서 나 개인의 승리에만 집착하면 나의 승리도 내 몸의 건강도 다른 이웃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게 된다. 나도 상대도 서로 건강에 책임감을 갖고 운동을 하자! 내 건강은 내가 책임을 저야 하지만, 다른 이의 건강도 내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