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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90): 죄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에 이상이 없는가?(1)

 

가룟 유다의 자살을 살핀다!

크리스천들이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나 동일하게 가룟 유다를 생각할 적엔 항상 배반에 초점을 두고 그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룟 유다가 만고에 배반의 아이콘이 돼 있다. 물론 3년간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다니며 가까이서 그를 섬기던 제자로서 그의 배반이 보통 사람들에게도 크게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자기 손으로 나무에 목을 매서 범한 생명 찬탈이란 자살은 그가 돈 몇 푼으로 범한 배반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죄이다


애당촌 아담의 후손으로서 인간의 배반은 죽을죄가 아니라, 아담 한 사람의 배반으로 인류 모두가 이미 에덴에서 죽음을 안고 동편으로 쫓겨난 상태로 범하는 연속적인 죄였다. 인간 세상에서의 배반은 너무나도 다반사요, 일상의 삶이다. 오늘도 우리는 스스로 주인 행세하며 배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실만 보더라도 가룟 유다의 배반은 우리 모두의 일상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담이 에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것 자체가 배반 때문이다. 결국 배반한 인류공동체를 용서하시고, 또 회복시켜서 자녀들로 품으시려고 인자가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가 돈 30량에 예수 그리스도를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긴 죄는 실상 거의 모든 인류가 날마다 혹은 수시로 짓는 동일한 죄일 뿐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배반의 죄는 가룟 유다가 원조가 아니라, 인류의 조상이 바로 배반의 원조이다. 유다의 자살은 무서운 생명찬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배반한 모든 인류의 죄는 돌아갈 길이 열려 있는 희망적인 죄이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자기 몫의 재산의 의지해 집을 나갔던 한 집안의 작은 아들에겐 목이 빠질세라 기다리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가 돌아가기만 하면 얼싸안고 환영해줄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밖에 나가 세상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그에겐 희망이 있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배반하고서도 그가 돌아갈 주님이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그리고 갈릴리 바다에서 그를 만나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를 다신 안아주셨던 것처럼, 가룟 유다에게도 그가 돌아가면 받아주실 부활의 주님께서 기다리고 있으셨겠지만, 유다는 스스로 주님에게로 가는 길을 영영 차단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마치 자신이 생명의 주인인 양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을지언정 주님께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배반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 그 이전 모든 사람들의 배반으로 모두가 이미 죽은 자들이었기에 그 죗값을 치르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이지 유다가 배반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니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의 죗값도 먼저 주님의 죽음으로 넉넉히 치르신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그는 자살로 주님께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영영 차단해버린 어리석음을 범했다. 자살은 단순한 죄가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마치 자신이 생명의 주인처럼 행세한 의지적인 죄이다. 결국 그가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영영 포기해버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 죄의 정의는 사람이 정할 수 없다. 창조주이신 아버지께서만 결정하신다. 죄의 성격을 규명할 적엔 하나님과 사람은 전혀 다르다. 남들이 보는 내 아들의 잘못은 아버지로서 내가 보는 관점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누가복음 15장의 작은 아들을 정죄할 자는 그 아들 스스로일 수 있고, 집안에 있던 형일 수 있고, 혹은 동네 이웃들일 수 있지만,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그를 정죄하지 않았다. 그가 집을 나가서 범한 방탕생활에 일언반구 묻지 않았다.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미 그 아들을 용서했기에 그가 돌아왔을 때 죄를 용서한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다림에 부응한 아들에게 그 아버지가 어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그 아들이 집을 떠나 세상에서 아무리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돌아온 아들을 정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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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그레이스교회 제3대 담임목사 청빙공고 관리자 2023.10.13
Notice 온라인 헌금 안내 관리자 2020.03.23
573 *1997년부터 교도소 사역 시작하며* ( 1 ) 김한철 2019.07.06
572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암의 전체* 김한철 2019.07.03
571 짧은 글(91): 죄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에 이상이 없는가?(2) 김우영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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