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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75): 아담의 불순종은 도덕적 순종으로 회복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한 부정명령에 대한 에덴에서 첫 사람이 저질은 행동의 불순종은 사람이 저질은 최초의 죄요, 죽음을 불러들인 무서운 죄요, 다른 순종으로 대체할 수 없는 죄였다. 그 부부는 한 몸으로 지음 받았기에 하와가 먼저 불순종했다고 꼬집어 말하지 않고, 아담만을 언급해도 그들이 하나로 지음 받은 존재이니 누구의 불순종라고 말하거나 첫 사람의 불순종이라고 표현해도 모두 같은 뜻이다. 아담과 하와는 한 몸이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그 한 가지 부정명령은 하찮게 여길만한 것이었을 수 있다. 그 아름다운 동산엔 다양한 과일들이 많았기에 그 가운데서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을 금하셨으니 과일 하나 따먹는 그의 첫 행동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과일 하나 먹어 본 건데 그것이 뭐 그리 죽을죄람? 이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물론 죽는다는 명령이 덧붙여 있으니 두려워했을 수도 있지만, 전혀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던 그들에겐 하나님의 ‘죽음의 경고’가 오늘의 우리가 받아들이는 두려움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었을 터. 거기에 처음으로 사탄의 달콤한 유혹이 다가왔으니 그들의 불순종은 그리 어려운 일일 수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쉽게 저질렀고, 그래서 자연히 쉽게 변명이 나왔는지 모른다.
물론 이 일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의 기초로 삼는 것이 창세기이고, 여러 번 언급한 것이니 여기선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때에 베드로를 비롯한 주의 제자들이 주님을 모른다고 한 자신들의 신분의 부정에 관해서 묵상에 초점을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인간의 신분은 모두가 어떤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아들인 것은 내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이고, 내가 아버지인 것은 내 아들과 딸 때문이다. 생명을 갖게 되면 새로운 신분이 생긴다. 생명 그 자체가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생명구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의 경고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두고 죽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생명관계로 인해 각 사람에게 어떤 신분이 부여되었다면, 그 신분을 부정하는 것이 관계의 단절이고, 관계의 단절로 그 신분이 사라지고 만다. 어느 부모에게 자녀가 사라지면, 그들은 더 이상 부모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신분이 사라지니 아버지도 어머니의 신분은 죽어 사라진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란 자신의 신분을 부정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었기에. 주님께선 그를 사탄이라 칭하셨다. 그가 주님을 부정했을 때 단번에 그의 신분이 바뀐 것이다. 보지 못한 무언가를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지 말라,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부정명령이었다. 그 부정명령은 간단해 보이고, 그 한 가지 열매를 제외해도 수많은 열매가 여기저기 열려있는 낙원이었으니 그 열매를 먹는 날에 죽는다는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있었더라면, 쉽게 범하지 않아도 될 명령이었다. 유일한 하나님의 부정명령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한 가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잣대로 삼으신 것이다. 순종은 우리 삶의 도덕성의 잣대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겐 죽느냐 사느냐, 곧 생사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