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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78): 사람 이야기 12
창조주의 소유와 종(servant)으로서의 사람! <2>
농촌에는 토지가 많은 집안엔 주로 농사일을 도맡아 일 해주는 머슴이라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종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신분이었다. 머슴은 평생 주인에게 묶인 몸종처럼 주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섬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가 싫든지 혹은 일 년에 얼마를 주겠다는 세경에 불만이 생기면, 그만두고, 더 많은 세경을 주겠다는 집이 있으면 일자리를 옮겨갈 수 있는 농촌 중심의 자유로운 직업인이었다.
나는 한국 전쟁 이전에는 잘 몰랐지만, 남쪽으로 피난해서 살아가는 동안에 한 농촌에서 머슴과 몸종의 차이는 분명히 본 적이 있다. 머슴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유롭게 다른 집으로 자기 이익에 부합되면 옮겨 갈 수 있는 농촌의 직업인이었다면, 내가 본 어느 부잣집의 몸종은 그의 아들조차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고, 자기 아버지 곁에서 빈둥대다가 시골 극장의 영화 간판을 그리는 일로 겨우 살아가는 걸 보았다. 아마도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만물의 영장이란 신분이 창조주의 종이라니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터.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 눈에 보이는 가시적 존재라면, 혹은 궁정에서 왕을 섬기는 신하라면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 모두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선 영적 존재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류의 수많은 비극이 눈에 보이는 땅위의 주인들에 의해서 벌어졌고, 그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존재가 일부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림자 행세를 하는 자의 힘과 권력이 훨씬 더 크고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잡고자 ‘사람의 아들’이란 한계 속에서 인간으로부터 고난을 당하신 후 끝내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약해지고 가난해 지셨던 걸 볼 수 있다(고후8:9). 그러나 그를 무덤에서 일으켜 부활케 하신 분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셨다. 영적실체이지만, 사람의 육안에 드러나지 않는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항해 보여 달라고 하면서 정작 영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영적 실체를 육안으로 느끼고, 볼 수 있는 기회는 주변의 자연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께선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엔 온전히 먹물 같은 어둠 가운데 계셨다(창1:2). 물론 누구도 없었으니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 영적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빛을 창조하셔서 빛으로 빛 없이 존재하던 어둠을 나누어 밤과 낮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창조하셔서 하나하나 지으신 것들을 친히 그 시간 속에 안겨주셨다. 모든 것들이 시간을 벗어나면 각자의 존재를 상실하고 만다. 창조된 피조물들이 창조된 시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온 우주에 아무 것도 없다. 모든 피조물은 모두 시간 속에서 시간의 지배하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누가 ‘너 지금 어디 있니?’라고 물었을 때, ‘응 나 지금 여기 있어’라고 말하면 틀림없다. 헌데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 속에서 죽어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 후 그의 죽음과 주검을 관장하실 분은 영(靈)이신 주인, 그 하나님 한 분뿐이고, 사람은 곧 그분과의 관계로 존재이다<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