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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84): 사람 이야기 16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 그들을 통해 본 사람의 마음
‘나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살고 있다’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됨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벗어나는 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부터의 멀리 떠나는 오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에서와 야곱이란 쌍둥이 형제를 통해 사람의 사람됨을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의 눈에 비친 에서와 야곱 중에서 누가 과연 사람다운 사람인가, 물어보고 싶다. 물론 어느 누구를 평가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거의 동시에 형과 동생으로 태어났다. 물론 그들 형제가 태어났기에 이삭은 그들의 아버지가 되고, 리브가는 어머니가 되었다. 물론 에서와 야곱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들이 되었다. 생명이 생명을 낳아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살아있는 생명질서이고, 이 질서가 깨지면, 사람의 생명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세상에 등장하지만, 그들이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 새 가정을 이뤄 독립하도록 명하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창2:24). 왜 하나님께선 사람을 애당초 한 가정으로 지으셨을까? 한 쌍의 부부로 이룬 가정 없이는 생명이 이어져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식물조차도 자신을 땅위에 존재케 한 근원을 떠나야 하는 건 자신들을 돌봐주어야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선 식물이든 동물이든 각각 ‘그 종류대로’ 각각 다르게 지으셨다. 각각 다른 종류 가운데 역시 똑같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내가 누구와 똑같다면, 네가 나와 똑같다면 나도 너도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끈 떨어진 연처럼 돼버린다. 각자 존재의미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의지적 뜻이 아니라면, 어느 다른 존재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게 만들 수는 없다. 때문에 이것은 결코 우연일 수가 없다.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의지적 결단에 의한 필연으로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각각 독립된 존재로 지음 받았다. 에서와 야곱이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이지만, 각각 독립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이 행사될 수 있었다. 각각 다르지 않으면 선택이 이뤄질 수 없다. 쌍둥이라고 해도 둘이 하나처럼 동일하다면, 하나님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어느 한 사람을 선택하실 수가 있다. 더구나 에서와 야곱은 결혼으로 부모를 떠난 것이 아니라(창1:25), 장자권에 목을 매던 야곱과 그의 어머니,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보다 못한 것으로 소홀히 여긴 형 에서. 이 일로 인해 그들 형제는 원수지간이 돼 동생이 집을 떠나 하란으로 도망치게 되고, 에서는 이방여인과의 결혼으로 스스로 독립해 부모를 떠났다. 인간 각자의 서로 다름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선택되는 일은 없다. 모든 각자가 다르기 때문에 선택이 가능하다. 선택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은 이뤄지지 않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