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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391): 「그 말씀」에서 싹튼 생명의 씨앗들(2)
1. 당신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누구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그 첫 번째 대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 대답에 신중을 기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의 「그 말씀」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나는 가장 먼저 성경 첫 페이지, 첫 줄에 “태초에‘라는 부사구 다음에 등장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곧 창조주(Creator)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려 한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여야만 모든 피조물들의 각자의 위치가 바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나 개인의 위치가 바로 세워지면 나는 창조주의 피조물들 중 하나가 된다. 누가 이 사실을 부정하면, 그는 곧바로 자신의 정체성의 현주소를 잃게 된다. 정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나를 지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내가 어디로 가오리까?’
2.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분이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우리의 육안은 한계가 있다.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보이지 않는 한계를 주셨다. 우리 눈이 세균까지도 볼 수 있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 혹은 일상을 살아가기가 죽는 것보다 더 힘들 수가 있다. 너무 큰 것도, 너무 작은 것도 볼 수 없도록 지으신 것도 창조주의 지혜요, 은혜이다.
3.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하시기에 하나님께서 피조물들 속에 질서를 부여하신 것이다. 한계 속에 살고 있는 그 어떤 피조물도 스스로 질서를 세우지 못한다. 무생물들의 존재 질서 역시 하나님의 창조질서 하에 존재한다. 바다의 둘레를 모래로 막으신 창조질서를 누가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피조물들이 시간 속에서 어떤 질서를 찾으려 해도 반드시 창세기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찾아보아야 강과 바다, 혹은 곤충이나 새나 크고 작은 동물들의 생태계 질서를 찾는 것도 창세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피조물의 질서가 어디서 깨지게 되었는지도 창세기에서 알아보아야 하고, 깨진 질서의 바로 세우기도 창세기로 돌아가서 그 근본원인을 규명해야 하고, 깨진 질서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찾아야 회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4.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가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따라야 한다. 에덴에서 선악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 지음 받은 사람의 후손인 우리 각자가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정한다면, 우리 역시 아담과 동일한 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5. 창조란 처음 만드신 분의 생각과 그 말씀에 의한 것이거나 흙먼지로 빚어 만드신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곧 영적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면, 사람조차도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종류대로’ 지음 받은 다른 창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사람 역시 젖빨이동물 중 하나로 분리해버리는 자학증세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