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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04): 믿음에 관한 바른 이해 3
크리스천들의 믿음은 각자의 확신이 만들어낸 자기 소유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온전한 선물이다. 그렇다면 그 자격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셔서 불쌍히 여길 바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주신 선물이 믿음이다. 혹시 ‘내가 왜 불쌍한 자인가?’라며 강력한 항의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로 불쌍히 여기심을 받으려면, 그의 신분이 하나님 앞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을 자여야만 한다. 이런 태도 역시 자기를 낮추는 자기 겸손일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죄인은 이미 그 어떤 행동의 상급과는 거리가 먼 약하고 불쌍한 신분이기에 자신을 낮출만한 그 어떤 높은 위치와는 무관하다. 현재의 원위치가 가장 밑자리로 불쌍히 여김을 받을 자리란 뜻이다.
우리 주변엔 겸손이란 말이 많다. 하지만, 겸손이란 말은 죄인에겐 가당치 않는 말이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삶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늘의 영광 가운데서 죽으시려고 땅에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곧 그 겸손의 원형 앞에서 우리의 도덕성을 내세워 겸손을 말하는 것은 자기를 높이려는 또 다른 위선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인간을 너무 비하하는 거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며 나무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아니, 너무나 많다는 표현보다는 아마도 절대다수이지 싶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받는다는 건 결코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하나님 앞에서의 흔들림 없는 각자의 당연한 정체성이다. 죄인을 높인다고 ‘죄인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믿는 자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다.
소위 한 나라의 왕인 다윗조차 머리 조아려 항상 하나님의 긍휼을 원하며 살지 않았는가? 다윗의 시편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라고 애원하는지를 우리조차 마음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의 어느 왕이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주시길 애원한단 말인가?
크리스천들은 영적 구원을 받은 자라도 육적인 삶에 있어선 언제나 하나님의 긍휼을 떠나 홀로 독립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진정 삶의 지혜이다. 하나님의 긍휼 없이 살 수 없기에 그 신분을 모두의 공통된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로 옷 입은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세상의 가치관의 영향 아래서 세상을 닮아 가게 돼 있다. 이것이 크리스천들이 믿음을 잃게 되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개인의 성공이나 그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해지신 긍휼의 은혜로만 영적으로 건강을 지킬 수가 있고, 믿음의 영적 삶이 가능하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선물하신 믿음을 각자 개인의 강한 정신적 확신 혹은 세상에서 이룬 성공으로 보란 듯이 살아가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와는 멀어지고, 동시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유일한 수단인 믿음 또한 깡그리 잃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