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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410): 오랜만에 맛본 수양회의 진수(3)
이번 수양회는 한 가지 주제가 있었지만, 그 주제를 살리는 다양한 프로그렘이 그믈처럼 잘 얽혀 있었다. 연로하신 분들에겐 따라다니는 일이 힘들기도 했겠지만, 결국 낙오자 없이 모두가 잘 따라다니며 참석에 열성이었다. 사실은 끌려서 억지로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발적 동참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불편을 전체의 것으로 확대하는 불평은 없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듯 했다.
이 번 수양회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전체 모임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한 분의 헌신적인 동시통역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통역을 맡은 한 분의 능력이라고 말하기엔 보다 큰 역사가 작용했던 게 아닐까? 초대교회의 시작이 바로 오순절 성령의 말씀 사역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한 분의 동시통역은 단지 한 사람의 능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의 말씀 사역이라 생각되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배우지도 않은 언어로 오순절을 맞아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말에 익숙한 사람들, 혹은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 모두에게 가슴을 뜨겁게 하는 힘있는 말씀 전달이었다. 어쩌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잔칫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교회 건물 안에서도 각각 함께 앉거나 서서 우리말과 영어통역으로 예배드리는 기회가 가끔이라도 계속된다면, 하나님의 가정을 더욱 굳건히 세우는데 도움이 되고, 끼리의 나누어짐이 아니라, 모두 하나되는 훈련도 평상시에 이뤄어지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덧붙여 생각해 볼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각 가정의 대소사의 실체를 모두가 알고 함께 웃고 함께 울기 위해선 막연한 기도 대신 보다 구체적인 기도로 이어지도록 각 가정사의 희노애락의 소식이 보다 구체적이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한 가정안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모든 가족들이 정확히 알 수 없다면, 한 가정, 한 식구라는 생명체에 걸맞지 않아 어색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이 일엔 진정 '끼리 끼리'가 사라져야 한다.
수양회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활활타오르는 장작불가에 둘러 앉아 무언가를 숱불에 익혀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의 웃움꽃이 상식인데 전혀 달랐다. 더구나 전문가들의 상업성 토크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마추어들의 진솔한 진행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많은 무리들 속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보는 기회였다 생각돼 마음 든든했고, 수고한 분들의 복된 젊음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