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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21): 나무 이야기 2 -나무들의 죽음을 보면서-
특히 산림보호 구역 내의 오솔길을 걸을 때 마주치게 되는 건 여기저기 즐비하게 누워있는 크고 작은 죽은 나무들의 시커먼 사체들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겐 전쟁터가 연상되고, 작은 나무들보다는 훨씬 큰 나무들의 주검들을 보면서 나무숲 전쟁터엔 사병보다는 오히려 전쟁의 지휘자인 장교들의 주검이 훨씬 많은 실상을 죽은 나무들에서 보지만, 전장에서 실제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병의 실상과는 전혀 다른 큰 나무들의 주검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나무들의 죽은 모습은 실제론 전장에선 볼 수 없는 형상임을 알지만, 왜 그런 현실과 다른 모습들이 오히려 뿌듯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진정 전장에서 사병들의 희생을 막으려고 앞장선 장교들의 용기 있는 희생을 기대해 보면 내 속마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전장의 현실일 수 없고, 또 그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벌이는 전쟁엔 큰 나무들의 죽음과 같은 자연현상과는 전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자세히 짠 계획에 따라 한국 여행 중에 오가는 길, 모두 대만 여객기를 이용했기에 대만을 경유했고, 한국방문 중 가고 올 때 2시간, 6시간을 대만 공항에 머물면서 조금이나마 대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공항 한쪽에 꾸며놓은 휴식처 한 곳의 주제가 나무였다. 전시된 나무의 성장 과정을 도표로 설명해 놓은 걸 보면서 그동안 내가 나무의 성장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무의 가장 깊숙한 중앙엔 핵이 존재하고, 그 주변으로 나무가 자라면서 나이테가 형성되기에 두꺼운 나무껍질에 가까운 부분의 나이테가 힘없는 노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나무의 껍질 부분이 늙어서 약하니 껍질이 있는 가장 바깥쪽으로 밀려난 형상은 요즈음 젊은이들에게서 밀려나 오갈 데 없어 서울의 탑골공원, 혹은 종료 3가에 몰리는 현상과 닮은 꼴인 걸 알았다. 나무의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야 청년기와 나무의 핵심 부분이 자리 잡고 있어 강하고 튼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껍질 부분의 나이테가 계속 바깥쪽으로 밀려나 힘없는 노인세대라는 것. 인간의 세대 차이와도 닮은 모습이다. 젊은이들에게 밀려난 힘없는 서글픈 세대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이 꼭 기억해 둘 점이 있다. 소위 나무의 노인세대가 힘이 없고 상처투성이이지만, 나무 전체의 보호자는 가장 약한, 늙고 쭈그러진 껍질임을 잊지 말자. 잎이 떨어진 것이 나목(裸木)이 아니라, 껍질이 벗겨진 체 앙상하게 죽은 나무가 나목(裸木)이다.
그런데 정작 나무의 죽음은 바깥쪽 약한 노인세대에서 시작되지 않고, 가장 강한 나무의 핵과 그 주변의 젊은 세대가 왜 먼저 죽어 썩기 시작해 나무 전체가 넘어지게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숲속에 가서 죽어 넘어진 나무의 어느 부분이 먼저 썩었는지, 그 추한 모양새를 먼저 살펴보자. 나무 잎새가 모두 떨어졌을 때, 어느 나무가 살아있는지를 알려면, 나무의 맨 위의 잔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나무이고, 부러진 잔가지가 많다면, 그것은 필경 나무 속부터 썩어서 죽어가는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속상해 죽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 현상이 나무의 깊은 속마음에서 울음으로 시작된다.
인간 역시 육체가 먼저 죽는 것이 아니라, 영적 단절,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 몸의 외피와도 같은 육체의 죽음을 가져온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동편으로 쫓겨나는 장면이 바로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의 정확한 모습이다. 곧 영적 죽음과 동시에 시간 속에서 육체의 죽음이 시작된다. 나무가 청년기에 속한 강한 부분이 먼저 죽는다는 사실과 흡사한 현상이 인간의 영적 죽음이 시간에 속에서 육신의 죽음을 가져온다. 시간 속에서 육신의 장수가 과연 축복일까? 시간 속에서의 인간의 장수는 생명의 주인 되신 영이신 하나님 안에서의 영생에 비해선 한 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