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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28): 엘리야와 그리스도 예수 승천의 차이
엘리야는 주전 875년에서 848년까지 사역한 주전 2천8백여 년 경의 선지자이고, 주님은 2천여 년경에 인자로 땅에 오셔서 30여 년간 지상의 사역을 고난과 수치스러운 죽음의 십자가를 거쳐 영광의 부활 후 승천하셨다. 두 분의 사역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두 분의 승천은 시대나 방법이 전혀 다르기에 그 차이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묵상하며 이 글을 쓴다.
주님의 승천에 비해 엘리야의 화려한 승천은 비교할 수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무엇일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진정 엘리야가 지상에서 당시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을 비롯한 모든 백성이 바알 신을 섬기고 있었을 때, 바알 제사장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의 공로를 인정한 성과급 승천이었을까? 아니면, 그 일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이세벨로 인하여 위험에 처하자 두려움에 떨며 피해 다니던 그를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시려고 하늘로 불러올리신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엘리야처럼 지상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이 가능할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죽음을 거치시고, 무덤에 주검으로 묻히셨던 주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덤에서 그 주검에 생명을 불어놓으셔서 부활시키신 후 40일간 지상에서 복음의 진수인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전달하시고, 승천케 하셨는데, 우리와 같은 죄인 중 하나인 엘리야를 죽음을 거치지 않고, 특별 조치로 천국 입성케 하셨을까? 아담 이후의 태어난 죄인으로서의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거치지 않고선 천국 입성은 불가능하다. 히스기야처럼 죽음 앞에서 15년간 생명이 연장된 적은 있지만, 결국은 그 역시 죽어 조상들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 다윗 왕 이후에 어쩌면 하나님께 가장 충실하게 헌신했던 히스기야였지만, 죽음을 거치지 않은 특혜는 없었다. 죽음의 시기와 죽음의 방법은 모두 다를지라도 공평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이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실 땐 백성들처럼 천막에 거하셨던 분이시다. 디셉 사람 엘리야가 죽음을 거치지 않을 특별 대우를 받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특별 대우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땅에서의 그의 사역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농사꾼 엘리사를 불러서 자신의 후계자로 삼은 후에 그와 작별하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지 않았는가? 어쨌든 엘리야가 영광스럽게 승천한 것은 엘리야에겐 이유가 없었고, 오직 하나님께만 특별한 뜻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야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케 하신 하나님의 특별 대우가 주님의 죽음과 만나서 효력이 발생한 것이다. 엘리야는 요한이란 이름으로 주님보다 6개월 먼저 보냄을 받아 모태에서 서로 만난 적이 있고, 그 후 주님께 죽음의 의식인 물세례를 베풀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고백했었다. 그가 헤로디아의 잘못된 행위의 죄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결국 헤롯 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주님께서 왜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와 동일시 하셨는지(마17:12,13;말4:5), 그 의문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구약에서 받은 승천의 특혜가 신약에선 죽음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해택을 은혜로 옷 입게 된 것이다. 주님과 6개월 차이를 두고 먼저 태어난 요한은 결국 주님과 동갑내기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보다 조금 먼저 죽임을 당해 지상에 올 때와 떠날 때 주님과 거의 동행한 것을 보게 된다. 주님께서는 백성들이 주님을 배반해서 로마 권력을 대변하는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지만, 세례자 요한은 로마 사람이 아닌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의 미움 때문에 목 베임으로 먼저 태어나 먼저 죽은 것이다. 두 분의 죽음에 공통점이 있다면, 주님 역시 유대인들의 미움 배반 때문에, 로마 권력 하에 로마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다. 누구든 죽어야 하늘을 산다, 죽음엔 예외 규정이 없다. 그러나 인류는 죽고 부활해야 하나님과의 영원한 동행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