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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31): 시니어의 삶의 보람찬 여정을 위하여 6
은혜를 주시는 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혹은 쉬운 말로 좋은 걸 은혜받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일하시되 온전히 주기 위해서 일하신다. 하나님께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말씀으로 혹은 사람의 경우처럼 손으로 친히 지으셨지만,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은 아무리 많은 것을 받았더라도 근원이신 창조주는 영(靈)이시기에 우리의 맨눈으로 볼 수도 없고, 피조물로서는 창조의 과정을 볼 수 없으니 피조물은 창조하신 분을 알 수 없게 돼 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눈을 감고서도 엄마의 젖을 빨지만, 누구의 젖인 줄도 알지 못하고, 홀로 생명을 살아갈 능력도 없지만, 무럭무럭 생명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부모나 형제들의 즐거움이 비단 그를 고통 가운데서 낳은 그의 엄마와 아빠와 형제들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의 부모는 모든 것을 그에게 주면서도 감사하고 기뻐하질 않는가? 그 아이는 그저 은혜의 선물이고, 그래서 감사하며 기뻐한다. 아기를 낳을 때는 죽음의 고통을 겪었지만, 곧바로 은혜와 감사로 웃을 수 있다. 어쩌면 가정에서의 부모는 마치 하나님 아버지에 빗대어 말할 수가 있지 않을까? 자녀들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베풀어 주는 부모, 그래서 부모님의 은혜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다.’라는 감사의 노래를 누가 과장이나 거짓이라고 핀잔할 수 있단 말인가? 은혜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주체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진짜 알찬 선물이라 여기고 감사하는 자체도 역시 은혜라 말할 수 있다. 은혜를 베푸는 분은 분명한데, 그 은혜에 감사를 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현실을 보면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감사가 그렇게 힘든 일일까?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이 받은 은혜를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살펴보자. 하늘을 보라. 그 광대함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높은 산들을 보면서, 혹은 밤하늘을 수놓은 많은 별을 보면서, 깊고 깊은 바다와 요란스럽게 혹은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나는 이집트의 나일강이 북에서 남으로가 아니라, 남쪽에서 북쪽 지중해로 도도히 흘러가는 웅장한 모습에 에덴동산에서 네 개의 강줄기가 시작되게 하셨던 창조주 하나님의 웅대한 역사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했는지 모른다.
목축업으로 살도록 이집트의 총리 요셉의 배려로 고센 땅에 자리 잡았던 70여 명의 야곱의 식구가 나일강물의 혜택을 풍성히 누렸을 것 같다. 은혜가 어디 도도히 흐르는 풍성한 강물뿐이었는가? 이 모든 것들로 인해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이유를 어디서, 아니 누구에게서 찾아야 할지, 진정 어디서 그 대답을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가 감사를 표해야 하고, 기쁨의 찬양을 드려야 할 대상이 과연 누구일까?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시다. 세 분이 한 분이 돼 은혜로 일하시는 걸 보고, 하늘의 천사들이 ‘아멘! 아멘! 아멘! 화답했을 터. 우리가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면서 은혜를 주신 영광의 하나님을 외면하면 어찌 될까? 은혜를 앞장서 베풀고 감사할 자는 오랜 세월 속에서 고난 중에도 받은 은혜가 많은 시니어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