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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35): '그 말씀'을 대하는 크리스천의 마음가짐 4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와 상대적 맞대결이 불가능하다. 이것을 해명하려고 몇 번에 걸쳐 계속 그분의 이름과 관련해 하나님을 계속 묵상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를 바르게 알아야만 그분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기도로나마 하나님 앞에서 입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선 '하나님의 이름(the name of God)'과 '거룩한 이름(a holy name)'이란 표현을 쓰면서도 정작 그분의 '나'라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들이 많다. 물론 그분의 다른 고유명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누가 누구에게 '내 이름으로 명하노니'라고 말했을 때, 오히려 그의 고유명사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표현임을 안다면, '하나님의 이름'이란 말은 그분의 이름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그 이름 자체로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이든 그 이름(name)엔 그의 속성이 더 깊이 드러난다. 개나리라는 봄꽃의 이름을 들으면 병아리의 예쁜 주둥이가 연상되고, 추운 겨울을 멀리 쫓아버린 봄기운이 솟구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개나리란 그 꽃을 대신한 이름이란 말의 의미가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의 넓이와 깊이를 어찌 헤아려 볼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할 적에 그 이름엔 그냥 보통명사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속성을 표현할 수 없기에 대신 표현한 말이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명은 오직 '나'(it is I)이다.
'반드시 나의 백성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반드시 나의 백성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말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새 번역). (Therefore My people shall know My name; Therefore they shall know that I am He who speaks, 'Behold, it is I.'"(NKJV) 이제 더 하나님의 이름, 곧 '나(IAM)' 앞에서 감히 땅에 속한 피조물인 내가 나를 주어로 내세워 하나님과 상대적인 언어로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첫 사람 아담이 에덴에서 범했던 죄가 바로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불순종의 죄를 범한 것. 피조물인 인간의 불순종의 죄란 하나님을 절대자가 아닌 상대자로 자신과 일직선에 놓고 감히 자신이 주인 노릇 하려던 원죄였다. 하나님께선 이런 사람에게 전도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 걸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3,14).' 우리 가정엔 아들과 딸 남매가 있다. 딸은 가정을 이뤄 우리와 가까이 살고 있지만, 아들은 위클리프라는 선교 기관을 통해 오지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25년이 넘었다. 그래도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우리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정말 우리 아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에게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를 떠나 방글라데시에서 자녀도 갖지 않고,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고 있는 게 아닌가? 나와 아들이 주고받는 사랑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수는 없다. 겉으로 사랑이란 용어는 같지만, 하나님의 사랑과는 상대적 비교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