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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55): 하나님을 안다는 것 5-나
불길처럼 치솟는 하나님의 긍휼(호11:8-9)
불교의 석가모니 역시 대자대비라는 말로 긍휼을 크게 강조한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자대비를 크게 외친 주인공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비는 어떠하길래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는 긍휼’이란 말로 강하게 표현하였을까? 여기에 반전이 숨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긍휼의 대상인 사람만큼 낮아져야 하기에 사람을 지으신, 그것도 타락한 인간의 위치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만이 사람이 되실 수가 있기에 긍휼은 하나님이셔야만 베푸실 수가 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는’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함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은 어느 한 사람도 그분 앞에 감히 나설 수가 없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의 처지가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자라는 각자의 고백이 없다면, 하나님의 불길처럼 치솟는 강한 긍휼일지라도 각자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려는 마음의 태도는 하나님께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구원받아야 자신의 자존심이 세워진다고 생각한다면, 진짜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맞짱 뜨려는 오만 중의 오만이다. ‘긍휼의 하나님’, 이렇게 말할 적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위해 우리 죄인보다 더 낮아지신 채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분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긍휼을 말씀하시면서 어째서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신 걸까? ‘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사람 신분에 관한 강한 부정의 의미가 무엇일까?
물론 사람에게도 남을 측은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 긍휼도 필요하다. 길가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손을 벌리는 것은 사람의 긍휼을 기대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사람의 긍휼로는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할 수가 없다. 석가의 대자대비(大慈大悲) 역시 바른 강조이긴 하지만, 그의 대자대비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다. 왜? 석가 역시 부정모혈로 태어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구원이 필요했다면, 하나님의 ‘불길처럼 치솟는 강렬한 긍휼’을 믿고 의존했어야 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자기 스스로 유아독존(唯我獨尊)만큼은 부르짖지는 않았어야 했다. 하나님의 긍휼은 그가 계신 하늘에서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힘으로는 이루실 수가 없으셨다. 인자로 사람이 되셔야 했고, 그 몸을 십자가에 내놓으셔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는’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