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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62): 하나님, 그 말씀의 본질을 찾아서 10
에덴에 펼쳐진 두 번째 복음
복음은 항상 영원하신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선 아담과 하와 부부를 에덴 낙원에서 추방하시기 전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나 뒤엉킨 땅에서 고된 삶을 살아갈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창3:21).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미움의 심판이 아니라, 긍휼로 인한 불쌍히 여기심의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께는 공의의 표현이었고,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겐 긍휼의 복음이었다. 공의(公義)의 복음을 위해선 점도 티도 없는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셔야 했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아담 부부에게 짐승의 가죽옷을 입히신 건 첫 부부를 불쌍히 여기신 긍휼의 마음을 아들의 죽음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에덴에서 펼쳐진 두 번의 복음은 모두 한 참 뒤에 인자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 죄인들의 죗값을 치러주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모형이요, 예표였다. 복음의 표현이 어떠하든 복음의 혜택을 받는 우리 죄인들에겐 다시 살아날 기쁨의 소식, 곧 복음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담 부부에게 가죽옷을 입히셔서 에덴의 동편으로 쫓아내시기 전에 그들을 왜 쫓아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셨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가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하시고 그들 부부는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어 그의 근원된 땅을 갈게 하셨다.‘(창3:22,23).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신 것은 그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의 ‘우리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임을 선언하신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 한 분만에 절대 지식이다. 세상에서 선악의 지식을 가지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바로 왕이다. 왕은 선악을 마음대로 주관하는 주체이다. 그가 선하다면, 선한 것이고, 그가 악이라면 악한 것이다. 다른 누가 선악을 관장할 수가 없다. 왕국에선 절대군주가 왕이다. 왕 외엔 누구도 선과 악을 논할 수 없다. 심지어 왕의 아들일지라도 왕명 앞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자신의 옳고 그름을 변명하다간 아들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렇다. 선악의 지식 소유가 바로 왕권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첫 사람 아담 부부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존재로 하나님의 아들의 가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의 우리 중 하나가 된 이상,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그 열매를 따 먹는 날에 죽는다.’라고 선언되었기에 하나님과 영적 단절로 죽은 자로 에덴에서 내쳐졌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측은히 여기셔서 에덴에 그래도 살게 하신다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 위험이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할 죄인이 영생한다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 동편으로 내보내시며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로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조차 차단해 엄히 지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