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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65): 교회의 이념 집단화의 위험
인간이 고심 끝에(?) 만들어 낸 모든 이념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힘을 키우기 위해선 이념의 집단화가 일어나고, 성격상 분열 또한 가능하다. 집단화에선 개인은 사라지고, 이념만 남아서 또 다른 사람들을 이념을 이용해 붙잡으려고 애쓰게 돼 있다. 어떤 이념이든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자신을 붙들어 줄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돼 있다. 자연히 이념은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게 돼 있다. 이념은 자기 힘을 키워줄 사람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있을 법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바쁘다. 어쩌면 그것이 행동하는 이념의 정상적인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영적 존재에서 그런 자를 성경에서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사탄이란 말할 수 있다. 사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께선 피조물 중에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는 거짓의 화신인 뱀을 형상화하신 것이고, 사람들은 ‘Satanism’으로 이념화시킨 것이다. 누구를 지칭해 ‘그는 자유인이다.’라고 말할 때, 그는 어느 이념에도 붙잡히지 않은 사람을 이름이다. 사람들이 어느 이념에 붙들렸다는 건 자유는 이념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인간에겐 자유가 먼저 존재했었기에 먼저 자유를 누리다가 인간이 이념에 붙들려 자유를 잃었다는 뜻이다. 인간은 지음을 받은 후 하나님의 초청으로 먼저 안식을 누렸다. 하나님의 안식을 누린 자가 자유인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선 에덴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으시고, 그 열매를 따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안식이나 자유의 제한이 아니라, 그 하나의 열매 외엔 모두가 자유라는 걸 알기를 바라셨다. 처음엔 ‘생명 나무의 열매’까지도 먹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선 에덴에서 첫 사람에게 먼저 자유를 알고 누리기를 바라셨지만, 오히려 자유를 걷어차고 스스로 부자유를 택한 자가 바로 사람이다. 눈과 입의 즐거움에 취해 자유를 잃은 것조차 알지 못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아예 심지 않으셨다면, 인간이 따 먹지 않아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짓지 않았을텐데’,라고 불평할 사람도 있을 듯싶다. 불순종을 처벌할 법이 없었다면, 순종도 자유이니, 불순종도 자유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순종의 아들을 옆에 두고 싶으셨겠지만, 불순종 없는 순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유 없는 순종에 불과하다. 자유 없는 억지 순종을 좋아할 주인이 어디 있는가? 선후 관계의 생명질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엔 반드시 존재한다. 피조물이 창조주가 될 수 없기에 창조주와 피조물의 선후 관계가 지켜지기 위해선 무엇이 불순종인지,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 피조물이 반드시 알아야 했다. 이 물음에 정답이 선악과이고, 그 한 가지 열매만을 금하시되 죽음의 경고로 금하셨다. 곧 창조주 하나님과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함께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지름길이었다. 양측 사이에서 자유 없는 평화, 자유 없는 순종, 자유 없는 쉼이나 기쁨이 가능할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과 나누어지면 거기서 기생하는 건 인간이 만든 이념뿐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은 사라지고, 인간의 이념이 종교화로 바뀌면서 하나님의 생명체인 교회, 곧 가정이 사라지고, 에덴의 동편엔 수많은 이념의 먼지만 쌓이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