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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삶과 생각 모닥불 앞에서 떠오르는 낱말들 9
하나님의 고유명사가 있는가?
한국인들이 ‘하나님’이라 말하는 그분의 호칭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고유명사로 알고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지, 아예 있을 수가 없으므로 한국에선 ‘하나님’으로, 영어에선 대문자로 시작해 ‘God’로 표기하고, 다른 신들(gods)과는 차별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있다. 한국에서 ‘하나님’으로, 그러나 가톨릭이나 또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으로 다르게 표기하지만, 그렇게 서로 다르게, 대문자로 표기한다고 해서 ‘하나님’이나 ‘하느님’을 고유명사라고 우길 수는 없다.
만약 하나님께 고유명사가 있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께 고유명사를 부여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야 마땅하다. 혹시 하나님 스스로 ‘내 이름은 이것’이라고 알려주셨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내 이름은 이렇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고, 다른 어느 누가 하나님께 고유명사를 부여했다고 우긴다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부를 수는 없다.
우리가 각자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존함이라고 해서 ‘아버지’라는 호칭 외엔 아버지의 고유명사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데, 어찌 감히 하나님의 고유명사가 있다고 해도 그 이름을 우리 입으로 부를 수가 있겠는가? 그런 논쟁이 가능한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피조물로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에게 과연 누가 하나님께 고유명사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집안에서 아들이 자기를 낳은 아버지의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고유명사가 있다고 해도 우리 입에 담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로 보내실 적에 모세는 ‘누가 저를 이집트로 보내서 왔다’라고 말해야 하나요? 곧 ‘저를 보낸 분의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해야 하나요?’,라고 여쭈었을 때, 하나님의 대답은 그저 ‘나는 나야(I am who I am)’라고 대답하셨다. ‘IAM’, 하나님께선 스스로 원인이 되신 자존 하신 분으로, ‘나는 나다.’라고 대답해주셨다. 하나님 존재의 실체를 말씀하신 것일 뿐, 고유명사로서의 이름일 수는 없다.
어느 가정에서든 아버지는 자녀들의 ‘누구세요?’란 물음에 ‘나다’라는 한 마디 대답이면 족하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로서 대문을 열어주려고 나온 자녀들이 ‘누구세요?’라고 묻는다면, 아버지의 대답은 ‘나다’란 한 마디로 모두 통하듯이 하나님 역시 만인의 아버지로서 ‘나다’가 전부이다.
하나님의 ‘나다’. 라는 반응에 또다시 ‘누구세요?’라고 묻는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음성조차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 그때 부엌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께서, ‘야, 이 녀석아 아버지이시다.’라고 가르쳐준다면, 그 아버지의 아들로서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한 가정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교회가 역시 하나님의 가정이요, 하나님께서 온 가정의 아버지이심을 얼마나 실체 성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느 한 장소에서 드리는 교회 예배는 결국 한 가정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가정예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