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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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간증
홍동호목자(티벳목장)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공부가 거의 끝날 무렵, 원 목사님께서 생명의 삶 강의를 가시면서 저와 마주치셨습니다. 눈이 마주칠까 봐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순간, 목사님은 “휴스턴!”이라고 말을 시작하셨고, 저는 “아차! 그물에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가시지요? 휴스턴 목자 컨퍼런스요!” 하시는데, 작년에 평신도 세미나에 다녀 왔는데, 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듣고 있던 강의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공부의 강사이신 김승룡 장로님의 체면도 있고, 시간적으로 여유도 되고 해서, ‘가자!’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정성스럽고 풍성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음을 평신도 세미나 참석 때 경험했던 터라 또 육신을 위해서 먹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녀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작년 평신도 세미나에 다녀와서는 용케도 간증을 부탁 받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간증의 그물에 걸린 것입니다.
2박3일 휴스턴 목자 컨퍼런스에서는 목장 사역의 재충전 시간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다녀 온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으니, 충전기의 7-8%는 벌써 소모된 기분입니다. 목자 컨퍼런스에서 저는 목자로서의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목장 사역 동안에는 주님의 능력으로 하는 사역을 주님께서 하실 수 있게 맡기지 않았고, 내게 주어진 의무감 때문에 내가 목자 일을 하고 있었으니 기쁨도, 감동도 모두 형식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목사님의 옛 설교 말씀대로, 저의 몸 구석진 자리에 웅크리고 힘없이 보고만 계시는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몸 속에는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엉겅퀴와 자갈들로 가득 차서, 주님께서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쓸모 없는 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로만 주님 주님 하면서, 주님께서 씨앗을 뿌려 열매 맺을 수 있는 땅이 되도록 내면의 땅을 기경해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주시고, 무엇보다도, 기도 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입술로만 주님을 찾는 저의 목소리라도 들으시고, 설레어하시며, 저를 떠나지 않으시고 기쁨으로 저를 지금까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아직도 저에게 “나에 대한 믿음과 성경 말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라” 속삭여주시니 감사합니다.
휴스턴 목자 컨퍼런스에서의 주제는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변화하는 삶”이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하루살이는 내일을 알 리가 없고, 한 철만 사는 메뚜기는 내년을 알 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과도 같은 저희들 인생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심 없이 믿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따지고, 재고, 계산하지 말고, 그저 말씀하시는 대로, 해보라고 하시는 대로 해보는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은 든든하시지 않으십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고, 우리가 믿고 행하면 영원한 천국의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짖고 찾는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주님을 잘 믿고,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십시요.
생명의 삶 간증
유승일 (약속의 땅 목장)
시작은 항상 그렇듯이, 거창한 계획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배 중 광고를 듣고, 막연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정적인 동기는 목녀님의 ‘강제’에 가까운 권고였습니다. 등록 게시판 앞에서 서성거리던 저희 부부 앞에 목녀님이 나타나 이름을 적어주셨습니다. 저희는 큰 ‘저항’없이 받아들였고, 그 상황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시험, 숙제, 간증, 평가서, 이런 목록들을 보는 순간,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늘 그러하듯이,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편해집니다.
생명의 삶을 공부했던 지난 십여 주 동안의 화요일은,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또한 세상에서 지친 마음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잔잔한’ 목소리가 예전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듣던 심야 라디오 같은 마음의 편안함을 주었고, 그로 항상 평온을 찾았습니다. 교회를 택하면서 목사님이 그 선택의 주요인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아마도 사람을 섬기게 될 수 있는 과오를 경계한 사람들의 권고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러한 존경심을 가지지 못하거나 잃었을 때, 교회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의 삶 공부 기간 동안 ‘감히’ 조금이나마 목사님의 인격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주일에는 볼 수 없는, 다른 목사님의 면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고, 목사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굳건히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레이스 교회를 잘 택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제 스스로를 아직도 많은 세상의 것들과 타협하는 속물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실제 세상의 가치에 휘둘리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생명의 삶을 마치는 지금 그러한 제 자신의 모습에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걱정, 정적에 대한 증오심, 성공을 향한 야망 등등, 세상에 대한 욕심과 걱정으로 머리 속이 가득 차있는 모습을 봅니다. 다만 최근 몇 주간 계속 듣고 되새겼던 ‘사람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고 그것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다툼이 될 뻔했던 순간들이 무난히 마무리 되었던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명한 것은 생명의 삶을 통해서 그간의 발자취를 여러 번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마음 속에 믿음의 열정으로 불탔었고, 예전에 확실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경험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합니다. 순종하고 섬기는 나의 모습은 종종 보이지만, 헌신하고 듣는 것을 행하는 나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 과정을 계기로 아직도 발전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제 자신에게 스스로 마음의 부담을 가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마음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