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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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중섭(6070 사우디목장) 2기, 2016년 전반기
지금까지 저의 기도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하나님께 저의 부족함을 아뢰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을 원하는 대부분 나를 위한 이기적인 기도였는데, 이번 삶공부를 통하여 중보기도가 기도의 핵심기도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주님의 이타적인 기도에 제일 충실한 기도이무로 중보기도는 타인을 위한 사랑의 허신임을 알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 제목을 받아서 기도의 결과까지 확인하는 지속적이고, 절실한 기도의 태도로 기도에 임하여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주위 분들의 어려움에 기도드리겠다는 인사치례로 남발한 중보기도에 대한 저의 가벼운 태도가 부끄러워 회개하게 하셨고, 앞으로 참으로 신중하고 진솔하에 중보기도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주님의 행하심을 닮아가야겠지요. 삶공부의 핵심은 교회를 위해서는 중보기도가 동역이 되며, 동력은 여럿이 모여 같이 기도하면 동력화되어서 시스템이되면 지속적이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수강하셔서 교회와 본인의 유익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목사님의 가르침 중에 가슴에 남는 말씀은,
1. 유산은 살았을때에 주는 것이데, 자식들에게 중보기도하는 것과 가르침은 소중한 유산이다.
2. 모든 영역을 신앙의 환경으로 만들어서 지키고, 확산해야 한다는 것과 기도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 특별히 중보기도는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셨으니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암송구절은 한 구절도 제대로 암송못했지만, 암송구절 중에 특별히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안에서 기도하십시요. (엡6:18)” 이 말씀이 마음을 끄는 것은 성도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라는 말씀 때문인것 같습니다. 다른 삶공부보다 숙제(필기)가 없으니 마음과 귀만 열고 경청하시면 되니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수상하시길 권면합니다.
목사님 나이 많은 암송구절도 암송못하는 부부 가르치시고 유념하여 주신 것 감사드리고,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이영희(모세기니목장) 3기, 2016년 후반기
35년 동안 교회 생활을 하면서 기도는 믿는 자의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고 내 나름대로 기도생활을 해왔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또는 말씀가운데 또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기도란 우리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 배우기 위한 중보 기도의 삶이 열린다는 소식은 조금 뜬금스러웠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힘들 때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때로는 호소하기도 하고 기쁠 때는 하나님께 영광돌려 드리며 기도 생할을 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삼 배운다는것이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는 기도는 1기로서 끝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2기가 열리고 또 1,2기 수료한 사람들이 중보기도를 한다고 자기들이 정한 시간 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참여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비록 중보기도의 삶을 수료한다 하더라도 특별한 시간을 내어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꼭 , 그리고 특별한 시간을 내어 교회에서 중보의 기도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든 아니든 그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일단 배우면 나의 기도생활이 더 풍성할 수도 그리고 도움이 될 것 이라는 이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첫 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기도란 무엇인가 하는 명제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날 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참여한 사람들에게 남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을 그들의 입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기도 중60%, 75%, 80% 무려90%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적어도 50%라는 대답도 없었습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착각이었든 것이 었읍니다. 또한 이웃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들을 향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었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어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 사랑을 모양이라도 비슷하게 나타낼 수 있는 사랑이 내 마음 가운데는 전혀 없었읍니다. 때로는 긍휼이 여기는,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웃이, 그리고 나라가 평안하는 것으로 인해 내가 평안해 질수 있어니까, 믿은 자는 해야 한다고 하니까 , 부탁을 하니까 또는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내가 중보기도하는 이유의 전부였읍니다. 그 다음은 내가 기도하는 순서였습니다. 내 가정의 기도 그리고 내가 필요한 기도가 우선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분의 사역을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시므로 중보 기도가 어떤 기도보다 우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도가 “ 어떤 사역의 준비 과정이 아니라 기도 자체가 바로 사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나를 돌아보고 세워가는 시간이었읍니다. 또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고 집어가며 내가 하고 있던 중보의 기도가 그리고 나의 기도 생활을 다시 정립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좋았든 것은 함께 기도하면서 잘 알지 못했던 성도들 사이의 사랑과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 교회에서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숙제가 아직 나에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기도하면서, 생각하면서 그리고 생활을 정리해 가면서 이 숙제를 풀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