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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1): 약하고 어린 자들의 이야기<5>
거듭남의 의미
지난번에 나는 하나님께서 천국 백성의 시민권을 어린아이들에게 주신다는 뜻으로 말했었다. 우리 주님께서 천국 백성의 자격을 어린아이들에게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어찌 어린아이로 변신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니고데모가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자기 뜻을 밝힌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주님께 질문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누구도 어머니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없다며 그의 이성으로 주님의 말씀을 반박한 것이다.
사실 인류는 원래 에덴에서 성인 부부 한 쌍으로 시작되었다. 태어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남녀로 지음 받은 사람이었다. 고로 그들은 어린 아이의 경험이 없는 성인부부였다. 물론 아담이후의 모든 인간은 모태에서 어린아이로 태어남으로 세상을 살게 되고,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 이렇게 태어나서 성장한 어른들에게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내세우시며 천국백성의 모범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모두가 빨리 건강하게 성장을 원하고 성공하기를 바라고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세상에 누구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천국백성이 된다고 말씀하신 뜻이 과연 무엇일까?
과연 거듭남의 비밀이 무엇일까? 육체가 아니라, 영적 거듭남이다. 그래서 하늘로부터의 거듭남이라고 말한다. 하늘 백성, 천국백성은 죽고 부활해서 하늘에 가서 얻는 신분이 아니라,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땅에 살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신분이다.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건 바로 영적인 거듭남으로 얻은 새로운 영적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육체는 물론 반드시 죽고 부활해서 다시 얻어야 한다.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어린아이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말씀하신 것일까? 나는 다윗의 시편 131:2절을 읽고 ‘젖 뗀 아이’를 생각해 보았다, ‘오히려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젖을 떼기 이전의 아이는 엄마보다는 젖이 먼저이지만, 젖을 빨리 줄 수 없을 땐 하다못해 장난감 젖꼭지라도 물어야 그 아이는 평안하다. 하지만 젖을 뗀 아이는 젖꼭지보다는 엄마가 옆에 있어야 평안하다. 주님께서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장난감이나 젖꼭지에 붙들려 있지 않고, 엄마가 옆에 있으면 평안한 그런 아이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가 아닐까? 엄마가 옆에 있으면 만족하고 평안한 어린아이처럼, 단순히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으로 받아들이신다면 그가 곧 어린아이가 아니겠는가? 다윗의 시편142편 5절을 보면, 이런 구절도 나온다.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젖 뗀 아이가 단순하게 엄마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내 오른 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단순히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아 그분께로 피하는 자가 어린아이가 아닐까 싶다. 거듭난 자란 엄마만으로 만족하는 어린아이, 혹은 모든 것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을 버리더라도 하나님만이 자신을 감싸고 품어주실 분이시기에 그분에게로 다가가는 단순한 믿음의 사람이 거듭난 자, 곧 어린아이가 아닐까? 어린아이라고 말하니까, 혹시 순진하고 잠잘 때 평화로운 어린아이를 떠올릴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좋아하시는 분, 마치 유치원 선생님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다가가 그분만을 의지하는 자가 거듭난 어린아이이다<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