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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28): 약하고 어린 자들의 작은 이야기<6>
-남은 자들이 취할 처신-
하나님께 등 돌리고 온 나라 백성들이 산산이 조각난 채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어져버렸던 이스라엘과 관련된 그 백성들 중, 곧 ‘남은 자들’에게 주신 희망의 메시지가 무엇일까? 찌꺼기처럼 남겨진 처지가 어떨지 생각해 보자. 사실 남은 자들을 가장 잘 이해하려면 제자들이 주님께로 오는 어린아이를 금했을 때, 주님께서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시며 천국이 그런 어린아이의 것임을 밝히신 걸 보면 ‘남은 자들’을 그런 어린아이에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될 만큼 ‘남은 자들’은 그 수가 적고, 더구나 약해서 마치 찌꺼기처럼 취급돼 그들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작고 약한 자이지만, 하나님께는 긍휼의 대상이다.
여기서 스스로 남은 자라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다짐해야 할 것은 그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어리고 약한 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물론 세상에선 손가락질 받을 수 있고, 누구도 그 신분을 자랑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으로서의 어린아이일 뿐인데, 그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 강한 척, 큰 척 한다면 그분의 긍휼을 기대할 수 없다. 누구라도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 길은 스스로 ‘남은 자’라는 정체성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남은 자의 신분을 유지해야 할 핵심 사안이다. 일단 그런 정체성이 확립되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 긍휼을 받을 자의 신분을 벗어나 큰 척 강한 척 할 수가 없다. 남은 자가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생명유지의 유일한 길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소수자로, 혹은 남은 자처럼 세상에서 약자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찾고 의지해야 할 분이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데,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넉넉히 살 수 있는 크고 강한 자처럼 행동하는 건 오만이고, 자기보다 더 크고 강한 다른 것을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결국 명을 재촉하는 실수 중 실수이다. 하나님의 최후의 자비를 거절하는 것만큼 어리석음의 극치는 없다는 뜻이다.
남은 자가 모든 악 조건 가운데서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원한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땅에 들어가거든 억울한 사람이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피난처를 만들도록 지시하셨다. 소위 약한 자, 남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베푸신 배려에서도 약하고 어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가 있다. 약한 자,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위한 사전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 살면서 곤경에 빠져 남은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 대신 주변의 강대한 제국을 의지했다. 물론 타 종족들의 우상을 의지하고 섬겼다. 주전 586년에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으로 붙잡혀 갈 때에 소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유대 땅에 남아있었다. 하나님께선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그 남은 자들에게 이집트 제국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셨지만, 그들이 예레미야 선지마저 데리고 갔다. 이것이 소위 그들의 종교성이다. 하나님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 선지라도 옆에 두고 싶었던 것. 한 손엔 강대한 제국, 다른 한 손엔 하나님을 믿고 붙잡고 사는 자처럼 말이다. 남은 자들, 곧 약자들의 위선은 더더욱 금물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의 일상은 어떠한가? 무의식중에라도 하나님을 떠나서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으스대거나 더구나 그 사실을 감사하며 헛된 힘이라도 키우려고 하지는 않는가? 누구에게도 찌꺼기처럼 남은 자로 보이고 싶지 않은 촛불 같은 자존심을 부풀리는 오만을 떨지 않아야만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기리며 살아남을 수가 있다<우영>.
짧은 글(17): 약하고 어린 자들의 작은 이야기<3> 12/16/1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