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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04): 보복 방지용 피난처

 

한국만큼 보복의 무법사태가 세월을 두고두고 오랫동안 너무나 당연한 듯 주연과 조연을 통해 연출되는 사회나 국가가 또 어디 있을까? 단순히 피아(彼我)를 분간치 못할 정도가 아니라, 마치 눈을 감고 아무데나 총질하듯 개인도 정치권력도 마치 보복의 대상이 누구이든 그것이 정의의 행사인 양 선()을 가장하고 당연한 듯 행사하니 그칠 기미조차 찾기 어렵다. 누가 뭐라 해도 보복은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이든 정당한(?) 이유를 내세워 당연시할 만큼 인간의 가치체계로 굳어져 있고, 또 정치적 술수의 하나로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선 결코 사라지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이다. 때문에 사람들 속에선 보복을 방지할 묘안을 찾기가 어렵고, 더구나 그 어떤 대안도 보복의 정당성을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에 대안은 그저 또 다른 대안을 양산할 뿐이다. 대안 자체가 또 다른 보복일 수가 있고, 어느 한 편을 만족시키는 것이니 상대가 받아들일 수가 없어 잠시 보복을 잠재울 수는 있어도 해결할 길은 없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운 비극이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취하신 조치가 보복 금지였다는 사실을 어찌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한마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명명된 곳이다. 그 땅에 보복의 피비린내를 하나님께서 먼저 맡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 보복을 방지하시려고 미리 피난처를 설치케 하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보복이 하나님의 법치를 무효화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향한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먼저 법으로 제시하신 것.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 없는 곳에선 보복은 그들의 삶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만큼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서로 안고 살아가기를 바라셨다. 하나님 없는 개인, 사회, 국가는 그들 개인, 사회, 국가가 주인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런 개인, 사회, 국가에선 법보다는 주먹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혈통중심 속에서 보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정의롭기까지 하고, 보복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다른 점 하나가 무엇일까? 보복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세상이 힘을 정의로 삼는 것 자체가 보복을 위해서이거나 보복을 막아내기 위함이다. 자신의 힘으로 약한 자를 착취했으니 언제든 보복을 당하게 돼 있기에 보복을 방지하려고 성벽을 쌓고, 가만히 앉아서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군사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니 언제 어디서든 전쟁은 일어나게 돼 있다. 그래서 세상은 전쟁에 일차, 이차 순서를 매겨놓고, 그 이후 삼차 대전을 기다리는 대기상태이다. 더구나 인간의 보복은 개개인의 선호도 혹은 이념에 따라 그들이 정의라고 말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한 편이 되면서도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보복의 칼을 휘두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념 앞에선 보복은 식은 죽 먹기이다. 보복은 철저히 인간의 거짓된 주인 행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철저히 금하셨다. 하나님의 나라에선 실수로 인한 약자가 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보복의 악순환을 사전에 차단하시려고 실수로 살인을 범해 약자가 된 자, 과실치사의 죗값으로부터 하나님께선 그를 보호해주시려고 좁은 땅에 피난처 여섯 곳을 설치케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족속을 요단강 동서에 여섯 곳에 배치해 피난처 중심으로 살게 하시고, 제사장으로 하여금 그 약한 자를 긍휼로 돌보게 하셨지만, 그 제사장이 죽으면 그 약자를 집으로 돌려보내 자유인으로 사면시키셨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 죄수가 자유의 몸으로 석방된다는 진리를 피난처 설치를 통해 미리 선언해놓으신 것. 사실 보복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법, 긍휼에 의한 심판이기에 하나님의 몫으로 따로 떼어놓으시고 대제사장을 세워 관리를 맡기셨지만, 실제론 대제사장의 죽음이 과실치사자의 자유, 곧 사면의 조건이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면 받고 자유의 몸이 되라고 피난처를 설치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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