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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09): 인간 나그네의 본향 찾기(1)
인간 나그네! 김 삿갓이 연상돼서일까, 혹은 ‘인생은 나그넷길’이란 하숙생이란 노래가 귀에 익숙해서일까? 나그네란 호칭이 그 숨은 뜻에 비해서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유가 무얼까? 아마도 계절에 맞춰 날아오는 제철에 익숙한 철새가 연상되기 때문인 것 같다. 봄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는 것이나 또는 추운 겨울을 보내려고 날아오는 철새들을 일컬어 낭만적으로 번역하면 그들은 모두 나그네들(migrants)이다. 하지만 철새는 나그네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나그네로 살아가는 새들이라서 철새라 부르는 건데 사람에 빗대어 나그네라고 이름 붙여 본 것이다.
어디 새들 뿐이겠는가? 첫 사람 아담 부부 역시 에덴동산을 쫓겨났을 때 그들의 그 신분이 곧 나그네였으니 인생길은 애당초 나그네로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에덴동산조차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단지 관리를 맡고 있다가 불순종하고 그곳에서 쫓겨났으니 아담은 애당초 한 평의 땅도 소유한 적이 없는 인류 최초의 머슴살이가 본업이었고, 에덴을 쫓겨난 이후엔 에덴의 동편에서 살기 시작했지만, 동편이란 방향 제시일 뿐, 어느 한 지역을 붙잡고 살도록 허락되지 않았으니 인간은 어딜 가도 땅의 소유주인 지주의 신분이 아니었다. 그렇다. 인간 나그네라는 말은 인간이 어디에다 발붙이고 땅의 주인으로 살아갈 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 가든 땅의 소유주가 될 수 없다.
애당초 땅은 말 그대로 사람이 차지할 수 없었으니 만약 누가 땅을 자기 소유로 만들려면 자기 힘으로 강제로 차지하거나 칼이든 창이든 말이든 전차이든, 더욱 발전시켜 대포이든 전투기든 첨단 무기들을 사용해서 소위 타인이 소유한 땅을 빼앗아 강제로 자신들의 소유로 삼았다가도 또 힘이 약해져서 빼앗기는 신세로 살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인간은 어디에 머물든 땅의 영원한 소유주가 될 수 없었으니 인간의 신분은 지주가 아니라, 영원히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땅의 주인, 지주(地主)는 없다. 지구상 어디를 가든 땅엔 본토인이나 나그네로 양분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본토인(native)과 소위 나그네(migrant)의 구분이 있을 수 없으니 모두가 나그네일 뿐이다. 우리 가족 네 식구가 미국에 온지 40년이 넘었고 한 치의 땅도 없지만, 옛날의 왕들처럼 온 나라 온 땅이 왕의 차지였다고 해도 그 역시 나그네로 살다가 나그네로 떠났을 뿐이다.
우리 아들내외는 미국을 떠나서 아시아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20여년이 지났지만, 「나그넷길에서 누리는 기쁨」이란 편지를 3개월마다 보내오면서 정말 기쁘게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다. 2년 반마다 6개월씩 안식년을 맞아 이곳에 오더라도 방문객일 뿐, 그의 소유의 거처로는 방 한 칸도 없으니 어디를 가든 철저히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게 맞다.
지금 미국은 원주민(본토인)과 나그네로 구분하고 마치 백인들은 본토인, 곧 원주민이고, 그 외 유색인종은 모두 어디서 굴러들어온 나그네들이니 이 땅을 떠나야 할 사람들인 양 정치권력이 편을 가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현 대통령이 백인들을 자기편으로 모으려는 정치 전략이란 분석이 있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나그네들을 어디로 쫓아내려 한단 말인가? 나는 정치인들의 입의 말을 별로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누구이든 정치(政治)가 바로 무엇이든 자기 손에 넣어 자기 것으로 삼는 자기화의 수단이며 분명히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전에 치과에 갔을 때 그곳에 비치된 「National Geographic」 금년 8월호를 보았다. 'We are all migrants'란 글제목이 좋아서 읽어보았다. ‘우리가 모두 나그네들이다.’란 뜻이다. Mohsin Hamid란 사람이 쓴 ‘우리는 모두 나그네들이다.’란 글이 현재 미국의 살아있는 권력자들 역시 미국 땅의 본토인이 아니라, 그들을 포함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소위 백인우월주의자들까지 나그네일 뿐이란 메시지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글의 맨 처음에 ‘우리 모두는 나그네의 후손이다.’라고 쓰고, 이어서 ‘우리 인종, 곧 Homo sapiens 는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Lahore에서 생겨나고 발전한 인종이 아니다.’라 선언하고 있다. 어느 한 지역에서 생성된 본토인이란 신분은 없다는 선언이다. 그 수많은 인종은 과연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과연 그 대답을 지구촌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