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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110): 생명과 죽음의 시작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좋은 것, 혹은 좋지 않은 모든 것, 아무튼 모든 것들을 0(제로)으로 돌려서 여기저기 실타래처럼 엉킨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생명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생명을 산다는 건 항상 어려움이 수반되기에 생명을 살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오히려 죽음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을 쉽게 입게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선 가장 두렵고 가까이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금방 죽음이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죽음이 가장 완벽한 해결사인 양 대접받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더구나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끝내주는 가장 완벽한 기재인 것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목숨을 끊어버리는 자들이 늘어나는 형편이니 생명을 너무 헐값에 팔아넘긴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어려움을 죽음으로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늘어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만을 누가 제시하라고 요구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생명과 죽음을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묶어서 대답할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애당초 생명과 죽음은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물론 생명이 사람의 손에서 생성된 게 아니니 죽음 역시 사람으로부터 온 것일 수 없다. 아마도 생명이 사람의 손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죽음도 사람의 생각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셋째 날에 이뤄진 것이 바로 최초의 생명체이다. 땅에 푸른 움이 돋아났고,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 돋아나게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1:11-12). 다섯, 여섯 째 날엔 공중엔 새들이 날고, 물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땅엔 모든 동물들을 지으셔서 살아가게 하시고, 여섯 째 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셔서 갖가지 생명체들이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된 것을 보게 된다. 맨 마지막에 지음 받은 인간에게 먼저 지음 받은 땅 위에 모든 것들을 다스릴 임무까지 부여되었다. 곧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청지기의 일이다


인간의 첫 삶의 터전이 낙원이었지만, 그 낙원엔 죽음이 있기 전에 미리 죽음이 선언돼 있었다. 죽음이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악이라면, 악이 먼저 선언돼 있었다는 뜻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날에 죽는다.’는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다. 죽음은 유일한 하나님의 경고에 불순종할 때 인간에게 닥칠 커다란 비극임을 미리 선언해 놓으신 것.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생명을 거둬들이시는 죽음도 오직 하나님 한 분께 속한 하나님의 일이다. 인간은 단순히 병들고 늙고 약해져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음에 처해지자 인간에게 맡기셨던 다른 생명체들 역시 인간의 운명과 하나가 돼 죽음에 처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생명은 애당초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자 인간의 생명과 다른 생명체들 역시 시간 속에서 수명을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모세의 죽음의 현장인 느보 산에서 하나님께서 생명과 죽음의 유일한 주인 되심을 살펴보자. 모세의 나이 백이십 세였지만, 그는 눈이 밝았고, 기력도 정정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선 그를 모압 땅에 있는 느보 산으로 올라가게 하셔서 거기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바라보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생명을 거둬들이셨다. 결국 모세에게 죽음을 안겨주셨다. 생명과 죽음은 주인 되신 하나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주인 행세를 할 수 없다는 확인이었다. 인간의 힘과 억지가 통하지 않는 것, 결국 약도 수술도 통하지 않는 것이 생명과 죽음이다. 모세의 생명을 거두시고, 그에게 죽음을 안겨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단순히 심판일까, 아니면 은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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